새전북신문

봄비

[금요수필]윤재석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3월 27일 15시35분

계절이 바뀐다. 자연의 순환이며 질서다. 봄비를 맞아 초목에 새싹이 돋는다. 파릇파릇하고 봉곳이 피어나는 봉우리에 봄날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봄에서 시작한 한 해가 시작된다는 알림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순환이다. 계절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자연의 질서에 따를 뿐이다. 떠날 때도 말없이 간다. 기다림도 없고 머뭇거리며 주저하지도 않는다. 다음에 온다는 약속을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떠난다.

우수(雨水)에 비가 내린다. 우수는 입춘이 지난 뒤 오는 절후다. 입춘에 이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겨울에 오는 비는 추위를 부르지만, 봄날에 오는 비는 얼었던 땅덩어리를 녹여내고 혹한에 땅속 깊이 잠들었던 초목을 겨울잠에서 깨우고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가 산하를 덮고 있다. 이른 봄 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돌면서 회색으로 피어나고 있다. 벌거벗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매화는 벌써 활짝 피어 이른 봄을 만끽하고 있다. 얼마 뒤에는 파란빛을 자랑하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자연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안 해도 제철을 찾아 할 일을 한다.

목련이 새싹을 내밀고 있다. 봉우리마다 솜털로 감싸고 있다. 봄날의 희망이고 즐거움이다. 새아씨 버선볼같이 하얀 모습으로 피어날 것이니 기다려진다. 이른 봄날의 차가운 바람에 흔들거린다. 흔들려야 피어난다면 그대로 두고 볼 일이다. 목련이 지고 나면 개나리, 진달래가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봄비는 봄을 몰고 오는 계절의 전령사가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는 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낙엽 속에서 겨울을 지내고 봄비에 깨어나 무거운 땅덩어리를 밀쳐내고 솟아나고 있다. 주위에는 야생초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누구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야생초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봄을 맞으려 발돋움한다. 자연의 가르침에 오고 가는 길을 알고 있으니, 때를 놓치거나 앞서오는 일도 없다. 땅 속에서 개구리가 눈을 뜨고 세수를 한다. 봄비의 촉촉함에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다. 얼마 후면 봄비에 물이 찰랑찰랑한 논배미에서 울어대다 알을 낳아 자손 번영을 꾀할 것이다. 종족 번식 또한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나는 것도 종족 번식의 한 방법이 아니던가.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고귀한 생명이다. 그래서 하늘은 이름 없는 생명체를 이 땅에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봄비가 내리면 시골은 바빠진다. 한 해 농사 준비에 이것저것을 챙겨야 한다. 쟁기 줄을 새로 만든다. 논두렁을 깎아 놓고 물이 논에 가득 차기를 기다린다. 농부는 풍년을 맞으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준비한다. 새벽 시보를 알리는 수탉의 걸출한 목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진다. 엊그제 시집온 새댁이 투덜댄다. 저놈의 녀석은 잠도 없는지 울어대니 날이 밝는다고 원망이다. 금침 속에서 단잠을 다하지 못함에 아쉬움일 것이다. 수컷이 큰 소리로 울어댄다. 시집온 새댁은 일찍 일어나야 시부모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을 일깨워 준다, 하면서 다시 크게 울어댄다. 봄꽃 피면 화사함에 즐거움이 있다. 여름의 푸른빛은 성장을 위해 불꽃 더위가 있다. 가을의 만산홍엽 속에서 삭막함을 느끼며 세월의 무상함을 안다고 하였던가. 겨울은 적요에서 다음을 위해 쉬어가는 길이라 할까. 사계절이 있는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정녕 축복받은 사람이 아니던가.

윤재석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은빛수필문학회 회장,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부회장

전북문인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상: 대한문학 작가상, 완산벌 문학상, 은빛수필 문학상, 진안 예술상.

저서: 삶은 기다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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