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자유정신의 기념비

[책마주보기]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기혜영)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2월 05일 08시07분

니체의 초기 저술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형식주의적, 합리주의적 철학을 비판적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중기의 저술들은 과거와 현재 내지 문명의 허상을 본격적으로 비판한다. 후기에 들어서면 허무주의, 모든 가치의 전도,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초인, 힘에의 의지 등의 주제들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 니체는 자신의 중기 사상을 대표하는 이 책을 ‘위기의 기념비’라고 한다. 말하자면 악화된 건강 상태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예술적 견해 차이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그너와의 관계의 소원함, 새로운 철학을 위한 진통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정신’을 창안한 것인데, 니체는 무엇보다 인간이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정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니체가 볼 때 볼테르는 자유정신의 전형이자 모범적인 계몽가였고, 신비주의와 이상주의적인 모든 것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볼테르에게서 자유로운 해방 정신을 발견한 니체는 이 책을 볼테르에게 헌정함으로써 바그너의 낭만주의적 허무주의와 결별하고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허무주의와도 거리를 두게 된다. 더하여 전통적이며 합리적인 형이상학과 종교 및 도덕에 관해서 비판하고 이어서 친구, 남성, 여성, 가족, 국가 등에 관해서 함축적으로 자신의 논점을 제시한다.

요컨대 형이상학과 종교 대신 학문을, 믿음과 신앙 대신 회의적인 지혜를, 바그너와 같은 낭만주의적 예술가 대신 볼테르 같은 냉정한 실증주의적 계몽가의 길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것은 세계와 신, 자신과 자신의 체험을 시험하여 모든 이상의 배후는 인간적인 것임을 탐색해내는 ‘자유정신’으로, 니체는 형이상학적 이상의 배후에 내재해 있는 모든 이상주의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필요와 동경에 불과한 것임을 피력한다. 또한 바그너 예술의 기만적, 병적, 염세주의적 경향을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학문과 철학을 통해서 허무주의적 병폐를 극복하고자 한다. 특히 실존적 의미의 개인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니체에게 인간은 총체적이고 유적인 존재가 아니라 홀로 선 인간 개인으로서만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개인은 그 어떤 체계와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극히 자유롭고 가볍게 방랑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니체의 자유정신은 후기의 저술에 등장하는 ‘짜라투스트라’와 ‘초인(위버맨쉬)’의 바탕이 된다.

결과적으로 니체에게 자유란 기존으로부터의 저항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저항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넘어섬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찾고자 한 19세기의 철학자, 니체의 인간적인 메시지가 21세기를 관통하는 자유정신의 기념비로 읽힌다.

기혜영 작가는

김제 청하 출신으로, '전라매일'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상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 이종근 기자의 최근기사

자유정신의 기념비

[금요수필]개(犬)

파로호에 묻혀 있던 역사의 진실

장수의 농부가 키운 동록 낀 사과는 단단하고 맛있다

책의 세계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무화과가 만들어내는 조금은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맛

기획특집으로 '한강' 등 다채로운 콘텐츠 실려

노래에 얽힌 추억담은 가슴을 따사롭게 해준다

동국진체 서풍의 고차원적 서예미학 정밀하게 분석

한옥마을 하얀 양옥집 53년만에 도민의 품으로 돌아와

배우 김신록·서현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문 연다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캠퍼스텃밭에 모종 심는 시민들

새만금 지속가능 개발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노인대학 입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