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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태조 견훤과 태조 이성계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1월 07일 15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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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갑진년은 청룡의 해이다. 용(龍)은 왕권의 상징이다. 왕이 앉는 의자를 용상, 왕의 복식을 곤룡포라고 부른다. 곤룡포에는 가슴과 어깨, 등에 용의 형상이 장식되어 있다. 국왕가운데 으뜸은 태조(太祖)다. 우리나라 도시가운데 두 명의 태조를 품고 있는 곳은 전주가 유일하다. 두 명의 태조는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과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이다. 국어대사전에 태조는 ‘한 왕조(王朝)를 일으킨 첫번째 임금의 묘호’라고 풀이하였다. 견훤은 900년에 후백제왕조를 건국하였고, 이성계는 1392년에 조선왕조를 건국하였다. 전주는 900년에서 1910년까지 1,000년간 한국 역사의 중심이었다.

그동안 왕건을 고려 태조로 호칭하고, 이성계를 조선 태조로 호칭하면서도 견훤을 후백제 태조로 호칭하는데에는 매우 망설이고 머뭇거렸다. 태조 견훤을 주춤거린 것은 역사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견훤과 왕건은 맞수였고,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에서 견훤은 왕건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왕건의 음모로 후백제는 멸망하였다. 고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이후에도 18년 동안 더 후백제 견훤에게 정치적, 군사적 수모를 겪었다. 마침내 왕건은 최후에 후백제 왕실을 교란시켜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음모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왕건은 승자가 되었고. 견훤은 패자가 되었다. 역사 기록은 승자의 몫이 되었다.

후백제가 멸망한지 200여년 후 1145년에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후백제 태조 견훤을 본기(本紀)에 편재하지 않고 열전에 편재하였다. 후백제 왕조사를 한 개인의 역사로 격하시킨 것이다. 더 심각한 왜곡은 견훤전에 견훤을 천하의 원흉, 아주 흉악한 인물로 거짓 묘사한 점이다. 이러한 역사 기록은 사관(史官)의 객관성, 진실성을 팽개친 소설에 불과한 편견인데도, 역사학자들은 김부식의 견훤전 기록을 마치 정사(正史)처럼 인용하고,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그대로 반영하였다. 그래서 수십년동안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워온 사람들은 견훤과 후백제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후백제 시기 고고학적인 유적 유물이 발굴되면서 견훤의 통치력과 국가운영 역량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후백제 고고학 자료는 당대 유물, 유적이란 점에서 정확하고 진실성이 깃들어 있다. 후백제 멸망 200여년 후에 쓴 기록과 후백제 당대 유적, 유물가운데 어느 쪽이 역사적 진실성이 있을까. 당연히 당대 유적이다. 이제 역사고고학 관점에서 후백제와 견훤을 올바른 시각으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견훤이 후백제 왕조를 처음 일으킨 주역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견훤에게 태조를 붙이는 것은 당연하고 주저할 필요가 없다. 특히 후백제의 도읍이었던 전주, 전라북도 사람들은 떳떳하게 태조 견훤으로 부르자.

최근 전주시내와 전라북도 익산, 장수, 남원, 정읍, 김제, 임실 등지에서 후백제유적 발굴로 그 실체가 서서히 위용을 드러내고 있으며, 태조 이성계 선대 유적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전주 경기전, 이목대, 오목대, 조경묘, 조경단, 자만동 등과 완주 태조암과 위봉산성, 임실 상이암, 남원 운봉 황산대첩비지 등이 그 곳이다. 전주시와 전라북도에는 태조 견훤과 태조 이성계 유적이 산재하고 있는데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지금은 문화콘텐츠산업시대다.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은 역사, 문화, 유적은 말할 것도 없고, 과일, 농산물까지도 브랜드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전라북도에는 후백제 왕도 및 관방유적, 석탑 석불 등이 즐비하고, 조선왕조의 본향 유적과 역사이야기가 넘쳐나는데도 브랜드마케팅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문화콘텐츠산업시대에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를 중시한다. 하드웨어는 개발 방식이라면 소프트웨어는 마케팅 방식이다. 태조 견훤과 후백제 유적, 태조 이성계 선대 유적은 개발 대상이 아니라 보존과 활용의 대상이다. 하드웨어 관광개발은 많은 예산 비용을 요구하지만, 브랜드마케팅 관광개발은 저비용 고효율의 효과를 가져온다. 유럽 역사문화자원의 활용과 관광자원화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지 정비하고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리이스 아테네가 대표적이다. 전라북도는 태조 견훤과 태조 이성계를 보유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명향이다. 두 태조를 어떻게 활용하고 관광자원화할 것인가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전주시가 추진하는 왕의 궁원 프로젝트는 개발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문화재 및 문화유적의 개발은 곧 훼손을 의미한다. 문화콘텐츠산업시대에 태조 견훤과 태조 이성계보다 더 큰 브랜드는 없다. 태조 견훤과 태조 이성계의 최고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가에 전북도민 모두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송화섭((사)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장, 전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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