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1년10월20일 17:47 Sing up Log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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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빵집과 당당히 겨뤄 세상에 나온 초코파이로 '전국구' 된동네빵집

PNB 풍년제과의 좌절과 성공 이야기
별 소문이 다 났다. 투자를 잘 못해서 망했다느니, 집 안 싸움이 났다느니. 온갖 잡음에 시끄러웠다. 전북을 대표하는 빵집답게 관심이 많았다. 갑자기 어려워진 경영을 두고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오랜 세월, 한 결 같이 자리를 지켜 온 빵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해명하려고도, 수습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 가는대로 정성껏 빵만 만들었다. 그게 반세기 넘도록 빵을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어두운 과거를 지나 빵집은 마침내 대박을 터뜨렸다. 손수 만든 초코파이가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매일 달달한 초코파이를 맛보려는 행렬이 매장 앞에 줄지었다. 지역 빵집에 인색하던 백화점들도 입점을 부추겼다. 몇 년 새 빵집은 온 국민이 사랑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빵집은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지금에서야 해묵은 가슴앓이를 하나 둘 꺼낸다. 고민 끝에 풀어놓은 ‘PNB 풍년제과’의 좌절과 성공. 그 영화 같은 이야기를 처음 공개한다.



△ 대 이은 64년 전통

PNB 풍년제과의 창업주는 고 강정문 씨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빵을 만졌다. 일제 치하 ‘도꼬 센베’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일본 제빵사들은 강 씨를 하인처럼 부렸다. 물을 긷고 반죽을 나르라고 할뿐, 제빵 기술은 알려주지 않았다.

국민들에게도 달콤한 빵을 먹이고 싶었던 강 씨는 곁눈질로 빵 만드는 법을 훔쳤다. 쪽잠을 자며 밤늦게 혼자 남아 빵을 만들었다. 피곤에 눈이 부르트고 손이 갈라져도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떠나자 강씨는 전주에 ‘풍년 센베 과자점’을 열었다. 이때가 1951년도였다. 밀가루가 귀할 때라 과자를 조금씩만 만들었다. 재료를 아끼면 좀 더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정해진 만큼만 과자를 구웠다.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는 그의 철학이 과자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녹았다. 입소문을 타고 과자는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메뉴도 다양해졌다. 주력인 센베부터 단팥방, 소보루빵, 크림빵까지 고루 인기를 끌었다. 1980~90년대는 유행에 민감한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미팅 장소로 사랑 받기도 했다. 그렇게 PNB 풍년제과는 전주 시민들의 추억이 어린 곳으로 자리 잡았다.

이 무렵 연로한 강 씨를 대신해 그의 아들 현희(67)씨가 경영을 맡았고 최근 손자인 철웅(45), 지웅(42)씨가 운영을 이었다. 3대 째 뿌리 내린 64년의 전통은 이렇게 계승됐다.



△ 빵집에 드리운 먹구름

1997년 IMF가 터졌다. 대기업이 무너지고 수십만 자영업자가 도산했다. 잘 나가던 PNB 풍년제과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빵 소비가 줄면서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래도 이때까진 버틸만 했다. 2000년 이후 우후죽순 등장한 프렌차이즈 빵집이 치명상을 입혔다. 동네마다 빵집이 하나씩 생기면서 더 이상 시내까지 빵을 사러 나오지 않았다. 연예인을 앞세운 광고와 자극적인 빵 맛에 전통은 무너졌다.

악재는 거듭됐다. 한창 경영이 어려웠던 시기, 상표권 분쟁이 붙었다. 외지업체가 ‘풍년제과’라는 상표권을 먼저 사들인 게 화근이 됐다. 외지업체는 본점에 풍년제과 간판을 내걸지 말라며 소송을 걸었다. 전주시민 누구나 인정하는 유서 깊은 빵집이 제 이름을 사용하지 못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당시 사장인 현희 씨는 몹시 괴로워했다. 아버지가 물려 준 이름을 외지업체가 사용하는 것을 지켜보기 힘들었다. 빵집 문을 닫을까 고민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 경영을 맡은 현희 씨의 아들 철웅 씨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할아버지가 썼던 상표에 영문을 더해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외지업체와 지루한 싸움을 계속 하느니, 더 맛있는 빵을 만드는 데 전념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PNB 풍년제과’라는 상호가 탄생했다. 반세기 넘는 전통을 이어 온 빵집의 이름은 이렇게 바뀌게 됐다.



△ 구세주 ‘초코파이’

철웅 씨가 운영을 맡은 뒤에도 빵집은 어려웠다. 프렌차이즈가 시장을 잠식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줄었다. PNB 풍년제과도 그저 그런 빵집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고민하던 철웅 씨는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가게만의 독특한 빵이 있다면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일 년이 넘는 개발 기간을 거쳐 새로운 빵이 나왔다. 처음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초콜릿만 잔뜩 묻은 빵이 인기가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주였다. 못미더워 하던 사람들은 빵을 한 입 베물고서야 태도를 바꿨다. 기존 초콜릿 빵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맛에 하나 둘 매료됐다.

두꺼운 초콜릿 코팅 안에 딸기쨈과 생크림을 듬뿍 넣은 게 주효했다. 오독오독 씹히는 고소한 잣도 매력을 뽐냈다. 세상에 나온 초코파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타 빵집들도 비슷한 초코파이를 내놨지만 PNB 풍년제과의 인기는 따라 잡지 못했다. 언론들도 ‘짝퉁’이 아닌, PNB 풍년제과의 초코파이만을 집중 조명했다. 보도와 SNS 등을 통해 초코파이가 전국적인 인기몰이를 하면서 PNB 풍년제과는 다시 부활의 길을 걸었다. 1951년부터 64년을 지켜 온 한결같은 정성이 드디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 PNB 풍년제과의 새로운 도전

현재 PNB 풍년제과는 철웅 씨와 지웅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본점은 장남인 철웅 씨가 한옥마을 분점과 마케팅, 사세 확장은 차남인 지웅 씨가 맡았다. 두 형제 모두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넘볼 수 없는 입지를 다졌다. 최근 지역 빵집에 인색한 유명 백화점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타 시·도도 PNB 풍년제과의 입점을 손짓하는 중이다. 철웅 씨는 모든 게 동생인 지웅 씨의 출중한 수완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3대를 내려 온 PNB 풍년제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초코파이에 이은, 새로운 제품 출시가 첫 번째다. 이미 70%이상 개발이 진행돼 내년 중 시판을 앞뒀다. 초코파이가 너무 인기를 끈 탓에 부담감이 적지 않지만 남녀노소 만족할 수 있는 빵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한다. 분명 초코파이 만큼, 진하고 풍족한 빵이 될 것이라는 게 PNB 풍년제과의 자신이다.

두 번째는 변치 않고 PNB 풍년제과를 사랑해 준 전주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프렌차이즈 공습과 상표권 분쟁 등 어려운 시기에도 빵집을 지켜 준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빚을 갚기로 했다. 지금도 요양 병원과 사회복지 시설을 돌며, 빵 나눔을 하고 있지만 좀 더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우선 과거 미팅 장소로 쓰인 본점 2층을 문화 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주말마다 연주회와 모임을 열어 시민들에게 예전의 추억을 다시금 돌려줄 계획이다.

철웅 씨는 “힘들어서 빵집 문을 닫고 싶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할아버지가 남겨 준 소중한 가게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그 동안 PNB 풍년제과를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정성껏 빵을 만들겠다”고 했다.



△ 나오면서

사실 취재 중 PNB 풍년제과 본점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얻어먹었다. 돈을 내려고 했지만 철웅 씨는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손 사레를 쳤다. 지면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정말 맛있었다. 기사를 쓰면서 ‘풍년제과’라는 상호로 쓰면 더 편했지만 굳이 ‘PNB 풍년제과’라고 계속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일제 치하에서 손이 곱아가며, 사람들에게 빵을 먹이고 싶어 했던 고 강정문 할아버지가 만든 빵집이 전주시 경원동 ‘PNB 풍년제과’임을 꼭 알리고 싶었다. 전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3대 째 내려온 64년의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정경재 기자 yellowhof@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