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획> 100여년전싹튼정신 정책-제도적 뒷받침 협동조합의 근간 이뤄

<2부> 협동조합 선진지를 가다-왜 퀘백인가?

기사 작성: 임병식 기자 - 2012.12.12 20:39

협동조합기본법이 1일 발효됐다. 1주일 만에 전북 2곳을 비롯해 전국에서 37곳이 설립 신청서를 냈다. 정부는 2017년까지 1만 개 조합, 5만 개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한다.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협동조합 사례에 비춰볼 때 허황된 꿈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협동조합이 대안 경제 모델로 뿌리내리기까지 겪은 간단치 않은 역사와 시행착오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협동조합 문화와 절차 존중, 생태계 조성, 그리고 정책적 뒷받침의 결과물이다. 협동조합이 창업과 고용 창출, 공동체 복원의 보고(寶庫)가 될지, 아니면 반짝 정책에 그칠지 실험대에 올랐다. 150년 협동조합 역사를 자랑하는 캐나다 퀘백, 몬트리얼, 벤쿠버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편집자 주>

“캐나다는 북미지역에서 협동조합을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답게 관련 정책과 제도가 잘 정비돼 있으며, 문화적 토양 또한 풍부하다. 특히 퀘백지역에서 협동조합은 고용창출과 지역개발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7일 퀘백주 재경부 청사에서 만난 미쉘 클레망 협동조합개발 과장은 한국 방문단을 반갑게 맞으며 말문을 열었다.

비행 시간만 20여시간 소요되는 한국에서 퀘백 협동조합 모델을 배우러 왔다는 사실에 상기된 표정이다. 그는 자신이 책임진 부서 직원 2명과 함께 3시간여동안 퀘백 협동조합의 역사와 문화, 정책, 지역사회의 노력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퀘백은 뉴욕보다 위도가 높은 까닭에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고 많은 눈이 내린다.

이날 아침도 손이 곱을 만큼 한파가 매서웠지만 3시간 가량 이어진 열띤 토론은 바깥 추위를 무색하게 했다. 클레망 과장은 말한다. 그는 우선 퀘백지역에서 협동조합이 발달한 이유로 민족적, 지역적, 문화적 특성이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100여년부터 싹튼 협동조합 정신에다,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협동조합의 근간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퀘백주는 지리적으로 북동쪽에 치우쳐 있다. 게다가 전체 인구 800만명 가운데 83%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영어권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까닭에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캐나다에 대한 국가 의식은 희박하며, 분리독립 기운은 잠재돼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자구책으로 협동조합이 발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일부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큰 원동력은 정책과 의지의 결과물임을 힘주어 말한다. 150여년 전부터 협동조합 정신에 바탕을 둔 보험업이 시작됐고 데잘뎅 신협은 100여년 역사를 갖고 있다. 또 퀘백 주정부는 1960년 협동조합 부서를 최초 설치했다. 이를 중심으로 협동조합 출현과 성장을 뒷받침 했다. 주정부와 지역사회가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주정부는 소비자 협동조합, 생산자 협동조합, 근로자 협동조합, 연대협동조합, 근로자 소유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다양한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퀘백주에만 2,800개 협동조합(비금융권)이 활동 중이다. 종사자는 9만 2,000여명, 조합원은 무려 120만명을 헤아린다. 금융부문 데잘뎅 신협은 500만명 조합원을 자랑한다.

동석한 실무 담당자 라발레씨는 덧붙인다. “퀘백 주민 70%는 1개 이상 협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다시 말해 퀘백 협동조합원은 전체 캐나다 협동조합원의 5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전체로는 9,000개 이상 협동조합에서 15만 5,000명이 일한다. 퀘백지역 비금융권 협동조합은 연간 115억 달러(14조원) 경제 규모를 창출한다. 당기 순이익도 매년 8.5%씩 성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퀘백 지역경제의 버팀목이다. 이 때문에 퀘백 시가지를 걷다보면 협동조합 마크를 부착한 상점을 흔히 만난다. 3일동안 묵은 호텔 주변에도 아웃도어 용품을 판매하는 소비자협동조합인 MEC 매장을 비롯해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설치한 파머스 마켓, 그리고 데잘뎅 신협까지 다양한 협동조합을 찾아 볼수 있다.

특히 퀘백에서 주거협동조합과 학교협동조합은 절대적이다. 퀘백지역 주거협동조합은 캐나다 전체 주거협동조합의 45%에 달하며, 2만 6,000가구를 건설·관리하고 있다. 경제적 약자들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 있다. 하우스 푸어가 사회 문제로 부상한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퀘백 주거협동조합은 좋은 모델이다.

또 학교협동조합의 75%가 퀘백에 있다. 호텔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라발대학 학생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일종인 학생협동조합은 상식을 파괴한다. 학교 구내에 대규모 매장을 두고 IT기기는 물론 책, 문구류 등 다양한 물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대학 주변 상인들에게 기대지 않고 학생들이 공동의 필요를 스스로 창출한 경우다.

퀘백 주정부는 주 단위 연합회, 분야별 12개 연합회(CQCM), 11개 지역협동조합(RDC), 정부 부처, 협동조합투자공사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스테판씨는 “현재까지 3만개 일자리를 만들었다. 앞으로 10년 안에 2만개를 추가해 총 5만개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또 향후 5년내 협동조합 투자금을 25% 늘리고 사업 다각화를 유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앞서 퀘백 주정부는 2005년 11월 협동조합법을 개정했다. 자본 조달 방법과 법정 적립금 기준을 명확히 하고 협동조합운영, 회계와 민주적 운영 등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자본과 금융의 경우 새로운 기금을 설립하고 퀘백 투자 프로그램 상향, 데잘뎅 신협의 지역자본 신설, 세제 개편을 담았다. 또 3개년 협약을 맺고 창업 기술지원, 특화된 창업 가이드를 지원한다.

이에 힘입어 최근 3년간 캐나다에서 설립된 협동조합의 60%가 퀘벡에서 창립했다. 퀘백 인구가 캐나다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할 때 퀘백 협동조합의 성과를 짐작케 한다. 특히 1999~2009년까지 10년동안 캐나다 전체에서 협동조합이 창출한 일자리(37%)의 절반에 해당하는 15.5%를 퀘백에서 창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동행한 이인우 박사(농협경제연구소)는 “결국 민족적 특성이나 경영 성과보다 협동조합 생태계를 창출했기에 퀘백 협동조합은 성공했다. 퀘벡에서 협동조합 생존율은 일반 기업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고 특히 가정내 서비스, 보건, 비지니스 서비스 분야 등에서 주요한 해결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협동조합이 지역개발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등산장비판매 협동조합(MEC,Mountain Equipment Co-op)

엠이시는 1971년 8월 여섯 명의 조합원들이 벤쿠버에서 5달러씩을 출자해 설립한 등산장비판매 협동조합이다. 마땅한 등산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까지 오가야 했던 대학부 산악인들이 최초 조합원들이다. 이들은 협동조합 방식을 통해 질좋은 등산장비를 값싸게 공급하자는데 의기투합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등산장비를 판매할 경우 거품을 제거할 수 있기에 최소한 이윤을 붙여 판매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 엠이시는 조합원 규모로는 캐나다 최대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전체 국민(3,400만명)의 10%를 웃도는 조합원 360만명의 거대 소비자 협동조합으로 성장한 것이다.

2011년 매출은 2억 7,000만달러에 달하고, 캐나다 전역에 매장을 두고 1,540명을 고용하고 있다. 엠이시는 대규모 소비자 협동조합으로 성장한 뒤에도 협동조합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모범 사례로 회자된다. 엠이시 조합원의 출자금은 지금도 40년전과 똑같이 5달러씩이다. 5달러만 내면 조합원이 되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비조합원이 엠이시 매장에서 물건을 사려면 먼저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등산용 칼을 사려는 기자에게도 매장 직원은 조합원 가입을 요구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 엠이시의 아웃도어 장비는 뛰어난 품질을 인정 받는다. 싸구려 제품이 아니라 최고 품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다.

엠이시 헌장은 “우리는 조합원이 소유하는 기업이다.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 잉여금을 남길 뿐 더 많은 잉여금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로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퀘백(캐나다)=임병식기자 montlin@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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