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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백중(百中)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9월 07일 14시28분

9월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씨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들녘에 나가면 가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곡식들이 제법 탐스럽게 익고 있다. 감과 대추 등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에 마음이 설렌다. 이렇듯 자연은 스스로 오고 가며, 덥다고 호들갑 떠는 우리를 가르치는 듯 말없이 움직인다.

음력 7월 15일은 백중이다.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백종(百種)이라고도 했다. 신라 경주에서는 이날부터 도성 안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나눠 삼베를 짜게 해 한 달 뒤 지는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한가위의 유래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 왔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봉이라는 세시가 된다.

이날을 도교에서는 중원이라고 부른다. 하늘의 선관(仙官)이 1년에 세 번 인간 세상을 살피러 오는데 그날이 ‘원(元)’이다. 1월 15일은 상원(上元), 10월 15일은 하원(下元), 그리고 7월 15일은 중원이다. 삼원(三元)마다 신선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제(醮祭)’가 중요한 도가의 풍속이다.

불가에서는 ‘우란분절’이라고 한다. 굶주린 망자를 구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는 목건련과 그 어머니의 사연이 있다. 목건련은 신통력이 빼어나 신통제일인 석가모니 10대 제자 중 한 명이다. 목건련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신통력을 발휘해 찾았는데 어머니가 아귀도에서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었다.

아귀도에 빠지면 목은 바늘구멍보다 작고, 배는 태산보다 커지는데 음식이 있어 먹으려 들면 불로 변해 굶주리며 살아간다. 목건련이 굶주린 어머니를 보면서 석가모니에게 간청한다. “붓다여, 부디 어머니의 고통을 멈추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석가모니는 매년 음력 7월 보름에 오곡백과와 다양한 음식을 마련해 사부대중에게 나눠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누구든 이걸 실천하면 살아계신 부모는 백년 만복을 누릴 것이며, 돌아가신 부모는 도리천에 윤회할 것이라고 했다. 석가모니의 말대로 실행하자 목건련의 어머니는 도리천에 다시 태어났다. 그후 부유한 사람들이 오곡백과를 시주해 가난한 사람과 함께 나눠 먹는 우란분회가 생겨났다.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의 장이 열렸다. 이날 주인은 머슴을 쉬게 하고, 용돈을 준다. 그 돈으로 시장에 가 놀았다. 백중장은 장꾼도 많고, 흥정도 많았다. 농악을 치고, 머슴들이 겨루는 씨름판도 열렸다. 또 농사가 잘된 집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위로했다. 이를 장원례라 한다.

우리 세시풍속은 절기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나누며 즐겼다. 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농경문화가 힘을 잃으면서 우리의 축제는 사라지고, 외래 명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류가 세계를 흔들 만큼 문화의 힘이 강해진 만큼, 이제는 남의 것 모방보다 우리 세시풍속 콘텐츠를 되살려 세계로 내보내야 할 때이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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