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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사]서구 중심적 시각·엘리트 중심적 시각을 넘어 비서구적 시각과 민중의 시각으로 보아야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위상이 제대로 드러날 것이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4월 21일 15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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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동일 교수의 저서와 김용휘 교수의 저서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양 열강은 비서구(非西歐) 세계를 가열 차게 침략했다. 이를 동양에서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그런 시대에 동양은 특별히 큰 전통적 지혜와 오랜 문화적 유산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기에 서양 열강에 맞서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와 생명계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방향을 역설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학(東學)의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선생을 비롯하여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 정역(正易)을 창시한 일부 김항(一夫 金恒, 1826~1898), 증산교를 창시한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1891-1909), 대종교를 개창한 홍암 나철(弘巖 羅喆, 1863~1916), 원불교를 개교한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 등이 있다. 그뿐 아니라 민중 속에서 떠돌며 민중선(民衆禪)을 실천한 선승(禪僧)들과 미륵(彌勒) 사상가, 그리고 수많은 산간과 농촌의 도가적(道家的) 또는 혁신유학적(革新儒學的) 민중사상가, 민중적인 역(易)사상가, 풍수(風水)사상가, 그리고 이세종(李世鍾, 1877-1942)과 이현필(李鉉弼, 1913-1964)과 같은 민중적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그런데 학계과 시민 사회는 지금까지 어떤 눈으로 이들을 바라봐 왔던가? 근대에 들어와 새롭게 대두된 동학을 필두로 한 여러 민중종교(民衆宗敎), 불교의 미륵 사상이나 화엄(華嚴) 사상⸱선(禪) 사상, 도가(道家)⸱선가(仙家)나 역(易)사상 등에 대한 민중적 관점⸱제3세계적 시각에서의 연구는 별로 없었고, 그나마 드문드문 나온 연구조차도 엘리트 중심,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선천세계(先天世界)의 엘리트 중심으로 보는 눈과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을 이야기하는 민중 사상가⸱민중종교 사상가들이 아주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류문명과 역사 안에서 줄기차게 신선한 생명의 물줄기를 계속 분출하고 그것에 알맞게 노동 생활과 정서 생활을 해왔던 민중(民衆), 소위 역사의 담지자이면서 동시에 처음도 끝도 없는 생명 운동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가장 그 생명의 본성에 알맞게 역사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총체적 지칭으로서의 민중. 그들이 자신들의 소망과 한을 자기 나름의 사상적인 형태로 스스로 보여 줄 때는 지극히 소박할 수밖에 없고 잘 정리되지 않은 흐트러진 형태로, 그러나 총체적 변혁⸱총괄적 변화를 요구하는 개벽지향적(開闢指向的) 방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선천세계의 지배적 철학을 기초로 후천개벽을 지향하는 민중사상⸱민중종교를 바라보는 눈으로는 이제 안 되겠다. 서구중심 즉 제1세계적 시각으로 제3세계를 보는 눈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 오히려 개벽지향적 민중사상으로부터 선천의 체제화된 엘리트 중심의 고급 사상을 다시 분해하여 재평가하고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서구중심의 학문 방법론을 철저히 ‘지방화’하는 한편, 비서구 세계 즉 제3세계를 중심으로 서구중심의 학문을 해체하여 새롭게 구성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비서구 세계를 볼 것이 아니다. 제1세계를 중심으로 제3세계를 볼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제3세계적 시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그리고 서구를 보아야 한다. 소박하고 아주 단초적인 표현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생동하는, 의표를 찌르는, 몇 마디 안 되는 표현으로부터 오히려 정제된 사상이 가지고 있는 반생명성(反生命性)⸱이데올로기⸱굳어진 껍질의 역사적 책임 소재를 비판해 들어가야 한다.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눈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최한기와 최제우가 이룩한 19세기 학문의 상승 추세를 21세기에 더욱 확대해서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조동일, 『우리 학문의 길』, 지식산업사, 1993, 214쪽),





이번 호부터 세 차례에 걸쳐 40여 년 이상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해오면서 잊지 않고 있는 필자의 고유(固有)한 연구 방법론을 차례로 소개한다.

첫째, 이미 쓰여진 논문이나 책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원(原) 사료를 널리 찾아 사실(史實; 역사적 사실)을 해명하는 데 주력한다. 왜냐하면, 이미 나와 있는 논문이나 책은 한문(漢文)이나 고어(古語), 외국어(外國語)로 된 사료 원문(原文)을 잘못 번역하거나 틀리게 풀이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시대 상황이나 사회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체계적이며 광범위한 사료 조사도 불가능하여 반드시 참조해야 할 사료마저 누락시키는 경우도 많으며, 똑같은 사건에 관련된 복수(複數)의 사료를 비교하여 분석하지 않은 관계로 사실(史實;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여 설명하는 연구도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료 없이는 역사도 없다, 역사는 사료로써 말한다.”(No document, No history)는 역사 연구의 핵심 명제를 염두에 두고 1983년부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동학 사료발굴에 공을 들였다. 동학(東學)은 1860년에 경상북도 경주에서 창도(創道)된 이후, 1860년대 후반은 경상도 북부 지역, 1870년대에는 강원도 영월과 정선 등 영서(嶺西)지방, 1880년대에는 충청도 지방을 거쳐 1890년대 초반에는 전라도 서남해 연안까지 교세를 확장하였는바, 필자는 동학 교세가 확장되어온 지역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료발굴에 전력을 기울였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日本)을 포함한 해외에 남아 있는 사료를 찾아내는 데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오랜 시간 사료발굴에 공을 들인 덕분에 과분하게도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으며, 필자가 발굴한 사료가 문화재(文化財)로 지정되는 보람도 있었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실이 2009년에 나온『사료로 보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모시는 사람들)이다.



둘째, 원(原) 사료 가운데에서도 특히 동학(東學) 교단 및 동학농민군(東學農民軍)과 그 후손들이 남긴 사료를 최대한 찾아내어 연구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택한 이유는 동학 교단과 동학농민군 측이 남긴 사료 외에는 거의 모든 사료가 동학과 동학농민군에 대해 부정적 시각에서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지(周知)하듯이, 동학은 1860년 창도 당시부터 조선왕조 지배층과 보수 유생 측으로부터 이단사술(異端邪術)로 간주되어 탄압에 직면하였다, 동학 교조(敎祖) 수운 최제우 선생은 보수 유생들의 탄압 때문에 1861년 11월에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한 바 있고, 이듬해 9월에는 경주부 영장(營將)에게 체포당하기도 하였다. 동학을 탄압했던 그들은 동학농민군에 대해서도 ‘동도(東徒)’, ‘동비(東匪)’라 부르며 ‘비도’(匪徒) 또는 ‘폭도’(暴徒)로 몰아 탄압하고 학살하였다. 동학 교단과 동학농민군을 탄압했던 조선왕조 지배층이 남긴 관변(官邊) 사료는 물론이려니와, 민보군(民堡軍; 반농민군)을 조직하여 관군(官軍)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탄압했던 보수 유생 측이 남긴 사료, 그리고 근대식 무기와 전술로 무장한 군대를 동원하여 동학농민군을 탄압하고 학살(虐殺)했던 일본 정부 및 일본군 측이 남긴 사료 역시 동학은 ‘사교’(邪敎)로, 동학농민군은 ‘비도’ 또는 ‘폭도’로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동학 교단과 동학농민군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지 않은 사료들이 지닌 문제점을 극복하려면 당연히 동학 교단과 동학농민군 자신, 또는 동학농민군 후손이 남긴 사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년간에 걸쳐 동학 교단과 동학농민군, 그리고 동학농민군 후손들이 남긴 사료발굴에 심혈을 기울였다. 필자가 발굴한 동학 교단과 동학농민군 측 사료는 필자의 박사논문『해월 최시형 연구-주요 활동과 사상을 중심으로』(한국학대학원, 1996) 부록으로 간행한『동학사료집성』(東學史料集成)1(선명문화사, 1996년 2월)으로 결실을 이루었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사료를 보태어『한국학자료총서 9: 동학농민운동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년)으로 출판되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박맹수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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