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신생전북론 18회] 맑고 밝은 숨 좀 쉬고 살자

■신생하는 숨의 철학

캄캄한 세상… 뭣을 해야 숨 좀 쉬고 살 수 있을까?
위태하고 목 마른 갈증의 시대, 쓸쓸하기도 하다
살짝 부는 바람에도 날라갈, 그러나 힘쓸 수 없는
죽음으로 급진가속하는 시대… “숨 좀 쉬고 살자”

기사 작성: 박은희 - 2024년 03월 31일 15시37분

1. '살려줘'의 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숨 좀 쉬고 살자", " 기운 좀 차리자" 란 말을 흔히들 쓴다. 이 말은 삶의 고통에서 나오는 절절한 말이다. 빚에 쫒기며 발을 동동거릴 때, 몸이 아플 때, 하는 일이 잘 안 될 때, 희망이 없어 앞날이 캄캄할 때, 절로 터져나오는 이 말은 몸과 마음이 토해 내는 진실한 기도의 소리다. "살려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믿음을 가지고 교회, 법당, 교당에서 하는 기도만 기도가 아니다. 분단, 독재, 외세의 고통에 시달릴 때 겨레의 입술에 새겨진 시천-주의 심고(동학에서는 기도를 심고라 한다.)를 1974년 34세의 철학가 윤노빈은 "살려줘"라고 간명히 정리한 적이 있다. 삶의 어두컴컴한 갱도에서 쉬는 숨과 매화 피는 봄빛에서 쉬는 숨은 다르다. 누구인들 봄빛에서 맑고 밝은 숨을 쉬고 싶지 않겠는가? 칸트, 헤겔, 노자, 공자, 수운만이 철학•사상을 하는 게 아니다. "숨 좀 쉬고 살자"는 말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몸과 마음의 철학이다. 철학, 정치, 경제, 예술의 일이란 '살려줘'의 심고를 듣고 "숨 좀 편안히 쉬게" 해 주는 것이다. 나 자신의 '살려줘', 타자의 '살려줘' 길고양이의 '살려줘'를 듣고 숨 좀 쉬게 해 주는 일이야말로 부처고 노자고 예수고 수운이며 거룩한 일이다. 마트 계산원의 아픈 다리, 식당일 하는 이들의 관절통, 망치에 맞은 목수의 손가락, 운전원들의 허리, 집 없는 설움, 입시지옥, 소멸하는 읍면리, 포크레인에 뽑히는 나무, 핵물이 침입하는 바다, 뜨거워지는 지구 사방팔방에서 "숨 좀 쉬고 살자"라는 심고가 터져 나온다.

2. 살려줘의 응답이 엉뚱하다

그런데 이 절절한 심고에 응답하는 말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엉뚱한 말들이다. 그걸 하면 빚 때문에 발을 동동거리지 않고 맑은 숨을 쉴 수 있고 기운 좀 받을 수 있는가? 대파 한 단을 875원에 팔면 죽어가는 여름지기(농부)가 되살아나는가? 그 말을 하는 이들은 인생이고 우리는 민생인가? 주민이 아닌 주인이고, 민생이 아니고 인생이다. 주민과 민생이라는 말은 왕조시대나 있는 시혜적인 통치의 말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대상화, 타자화라고 한다. 대상화 타자화한 정치가 우리들 숨통을 쥐고 있다. 주권자가 아니고 주권인이고, 노동자가 아니고 노동인이며, 농민이 아니고 농인이다. 우리들은 놈 자(者), 백성 민(民)을 쓰고 저들은 정치인, 기업인을 쓰는가? 정치자, 기업자라고 써도 되는가. 기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민인가? 숨 좀 쉬고 살려면 대상화 타자화한 말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가 아니라 인주다. 아니다. 인주에는 새만금 방조제로 숨통이 잘린 만경강과 동진강의 숨결이, 무지막지하게 베어진 전주천의 버드나무의 숨결은 없다. 그들 또한 시천주다. 하늘님이다. 그러니 민주고 인주고 사람만에서 벗어나 지구로 넓고 깊어져야 한다. 동학에서는 이를 하늘주의(한울주의)라 한다. 김대중은 지구민주주의를 제창한 적이 있다. 그렇다. 지구민주주의다.

박홍규 작 한지에 채색화『내 청춘의 비망록』출렁이는 보리밭의 생동하는 숨 좀 쉬며 살고 싶다. 박 화백의 허락을 얻어 게재

3. 죽임의 문명은 그만, 살리는 문명으로

전주천 버드나무를 죽이고 개발성장한다면 그 개발성장이 우리 숨통을 죌 것이다. 그러니 죽임의 문명인 것이다. 기후변혁은 죽임의 문명이 만든 것이고 그 대가는 저들 말대로 민생이 독특히 치르고 있다. 사과가 금사과가 되고, 자원 변동으로 물가가 오르고, 빚이 늘고 하는 일들은 지구 숨통을 죈 기후변혁과 무관하지 않다.

어디서인가 기후변혁 때문에 식량과 에너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전쟁이 난다면 식량과 에너지 값이 오르고 결국 전체 물가가 오른다.

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식량•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으로 본다. 이 전쟁은 기후위기가 촉발한 기후전쟁이다. 기존의 냉전시각, 네오나찌 척결 등의 정치주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평원에 쏟아지는 햇빛 자원과 식량자원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전 인류가 나눠야 할 지구공물이다. 나토유럽과 러시아가 독점할 수 없다. 기후전쟁 때문에 우리나라 물가는 고공행진을하면서 사람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숨 좀 쉬고 살자. 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만권시서의 철학이며 사상이 무슨 소용이랴. 모든 물(物)은 물이 아니라 생성체이자 생명체다. 돌을 옮겨도 하늘과 땅에 알리고 옮겼다. 여기에는 생, 삶, 생명, 생성이 있고, 이는 기(氣), 힘, 목숨, 숨과 같은 말이다. 숨으로 모든 이와 것들과 이어지고 생성한다. 숨 쉬지 않는 것은 없다. 쇠도 돌도 숨을 쉰다. 흙, 돌, 쇠 나무가 없었으면 인류 문명인들 있었겠는가? 숨이 도(道)고 길이다. 숨 좀 쉬고 살자. 내 숨과 다른 숨이 이어지는 걸 끊지 마라. 모두는 자신의 숨을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파업으로, 몸일로, 광합성으로, 거름으로, 비로, 눈으로, 꽃으로, 바람으로 들고 나며 숨과 숨을 잇고 있다. 숨 좀 쉬고 살자. 총, 칼, 돈으로 숨통을 죄는 이들이나 문사철의 거짓으로 숨통을 죄는 이들이나 같은 시러베들이다.

수운이 말하기를 '무형유적(無形有迹)'이라 했다. 왜 아니겠는가? 숨 또는 기는 형상은 없으나 자취는 있다. 임자들의 숨과 내 숨은 이어져 있다. 필자는 이를 '사건의 연쇄파동'이라 부르지만 해월의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숨을 쉴 때마다 세상 공기(분위기)가 더러워지는 숨들도 있다. 더 나쁜 건 안갯속에 숨어 비겁한 암초 숨을 숨는 이들이다. 맑고도 밝은 숨 좀 쉬고 살자.

4. 결승문자의 매듭이 풀리기를

임동확 시인의 시집 『부분은 전체보다 크다 』에서「 박꽃 피는 시간 」숨 좀 쉬고 살았으면 했는데 큰 위로가 된 시집이다.

임동확 시인의 시 를 읽은 소감을 쓰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임동확 시인의 시집『부분은 전체보다 크다 』에서 「박꽃 피는 시간」을 감상했다.

캄캄한 세상....뭣을 어떻게 해야 숨 좀 쉬고 살 수 있을까? 위태하고 목 마른 갈증의 시대, 허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살짝 부는 바람에도 슬그머니 날라갈, 그러나 힘쓸 수 없는 혼돈이 죽음으로 급진가속하는 시대 "살려 줘!, 숨 좀 쉬고 살자."

"그저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수수께끼 같은 시간이 가만 그늘처럼 피워낸 흰 박꽃 위에 살짝 내려 앉아 있다"

시어의 색깔이 선명하다. '그늘', '흰 박꽃', '살짝', '녹슨 드럼통', '개구리밥', '색색의 잘 마른 빨래', '펄럭이고', '호탄리의 오후'(호탄이 화엄경이 씌여진 서역의 어느 땅이라는 것은 김남수 님의 평을 듣고 알았다.)... 이 "색색의 잘 마른 빨래" 같이 자기 일들을 스스로 하는 사물(사건과 개체, 개별자)들을 드러내는 시어를 멍석 피듯 깔아들 보시라.

시월의 어느 중소도시 오후, 붕 뜬 것 같기도 하고, 낮술에 취해 다리가 허방질을 거듭하는 것 같기도 한데, 매듭짓기는 천 년 전에 지어 백만을 살린다는 비결을 지닌 빨래 - 사람을 널어서 말리고 있는 '결승문자'의 매듭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매듭을 잡아서 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풀리지 않아서 "수수께끼 같은 시간"이 "결승문자"와 대구를 이루며 감상자를 주체 없는 "무인칭의 미래"로 밀어넣는다. "거추장스런 가식과 격식을 벗어던진/....../3층 주택단지 난간마다 색색의 잘 마른 빨래들이 결승문자(結繩文字)처럼 펄럭이고 있는 호탄리의 오후 // 투명한 고요를 덥석 문 죽음의 먹이사슬이 배고픈 현재의 뱃속으로 끝없이 파고들다가 또다시 무인칭의 미래를 내뱉고 있다."는 (임동확 시집 「박꽃 피는 시간」 후반부)

시인은 결승문자 매듭이 풀리지 않은 죽임의 문명속에서 배가 고프다. '무인칭의 미래'....주체와 타자, 무한과 유한의 질주.....환대와 거절, 직시와 외면....

아 어쩌면 '무인칭의 미래"가 블랑쇼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랑시에르의 '무의 공동체', 불가의 '화엄의 우주', 수운의 "무위이화의 시천주 나라", 증산의 '조화정부'와 맞닿아 있는 '결승문자'이기도 하겠다.

그렇다면 '무인칭의 미래'는 긍정의 사태인 것이다.

그 박꽃이 대박꽃이든, 소박데기꽃이든, 호박꽃이든, 조롱박꽃이든 튀밥 터지듯 팡팡 터져서 숨 좀 쉬고 살면 좋겠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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