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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내일]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꽃은 시들어도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도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남 탓하지 말자”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9월 15일 13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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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공간정보 부회장 이태현







꽃은 시들어도 바람을 탓하지 않고, 낙타는 모래 폭풍이 불어와도 결코 사막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2018년 벽두부터 시작된 미투(#me too) 사건은 매일같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탓하는 공방전을 벌였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고, 피해자는 위계에 의한 불가항력적이었다고 한다. 본래 성문제란 힘 있는 세력들이나 가진 자들의 배부른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8.15일 광화문 집회는 어떤가?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는 서울시가 코로나19 재확산 방지를 위해 집회 금지 협조 요청을 했음에도, 지방의 교회에서까지 버스로 동원되어 2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를 강행했다. 그 날 마이크를 잡았던 전목사는 이틀 후인 8.17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완쾌 후 퇴원해서도 정부만 비난했다. 광화문 집회 참석자 가운데서도 확진자가 수백명이 나왔고, 사랑제일교회 신도 역시 1,100명이 넘게 감염되었다.



국가 재난에 버금가는 상황임에도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한다. 그러나 헌법상의 권리가 생명에 우선 할 수는 없다. 종교의 탈을 쓰고 공동체의 안전과 생명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된다. 전문가들은 지난 3월 대구 신천지 대확산 보다 확산속도가 빠르고 더 위증하다고 한다.



또 전공의와 전임의는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집단으로 휴진하고 의대생들은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오죽하면 문재인대통령이 군인이 전장을 이탈하고, 불이 났는데 소방관들이 파업한다고 현 상황을 얘기했을까 싶다. 이들의 행동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도무지 안중에도 없다. 종교인과 의료인의 참모습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시시때때로 터지는 많은 사건·사고를 보면 그 원인을 놓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탓한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능멸하려고 한다. 당사자는 원인과 핑계를 만들어 책임을 돌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당사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다는 책임 전가가 사회에 만연되어 안타깝다. 서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 그런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군자와 선비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다.



불원천(不怨天)은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다. 우리의 조상들이 선비정신으로 삶이 고달프고 고난에 처할 때마다 마음에 새겼던 인생의 화두였다. 비가 오면 비님이 내리신다고 고마워했다. 오랫동안 가물면 비님이 내리시길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며 기우제를 지냈다. 즉,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거스르지 않고 살아왔다.

불우인(不尤人)은 ‘남을 탓하지 마라’다. 세상사 모두가 자기 스스로 일을 벌이고 스스로 업을 받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의 모습은 오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은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마라’라는 뜻이다. 하늘을 우러러 공경함이 삶의 일상이어야 한다. 즉, 하늘 이치에 순하여 그 뜻을 행하면 복을 받는 것이다.

공자도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고 했다. 순천자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요, 역천자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가 아닌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할 수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 활성화되면서 내수와 수출이 줄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원망을 많이 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나에게 다가온 운명을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극복 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용에 나오는 ‘내 탓이요’를 가슴에 품을 때 모든 것은 평온해질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나 자신의 일이라 마음먹어야 한다.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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