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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코로나19 그리고 반면교사(反面敎師)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6월 03일 13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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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동(주 아제르바이잔 IT 정책자문관)



아제르바이잔을 아시아의 끝, 유럽의 시작 지점이라 한다. 나는 요즘 이 두 대륙의 경계에서 COVID-19이라고 불리는 팬데믹을 지켜보고 있다. 세상의 공통사를 양손바닥에 놓고 동시에 들여다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3월초 무렵, 한국이 하루 900여명을 오르내리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누적 확진자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때는 만사 제쳐두고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발 빠른 대처로 사태를 진정시킴은 물론 모범적인 방역 사례로 비난이 칭송으로 바뀌었다.

반면에 우리가 틀 잡힌 대응을 하고 있는 동안 방심하던 세계는 밀려드는 바이러스 쓰나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황한 이들은 한국을 배우자며 러브콜을 보냈다. 분명 우리에겐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마냥 우쭐해 하며 기꺼이 가르쳐주겠노라고 호언만 할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배울게 더 많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상처 입은 그들에게서 되려 뼈저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바로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배움이다.

우선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세계를 바이러스 천지로 만들었다며 세상의 뭇매를 맞고 있는 전체주의사회 중국으로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 ‘돈이냐 국민의 건강이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기로에서 갈등하다 결국 올림픽도 놓치고 방역도 제 때를 놓쳐버린 일본에게서도 당연히 배워야 한다.

한국은 IT 선진 기술의 엄호하에 결국총리스스로가중환자실을다녀와서야 ‘stay home’을 외쳤다. 마스크 쓰는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는 신사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 공허한 메아리였다. 신천지 집단 감염 대응을 종교탄압이라고 한 술 더 뜬 BBC 방송과 더불어 이들에게 배울게 많다. 한국의 드라이브쓰루의 성공적인 효과를 뻔히 보고도 ‘차 없는 사람은 이용 못하는 차별’ 이라고 배 아파했던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도 한 수 배우자.

효과가 검증된 나라의 외교부 장관과의 인터뷰에서조차 한국 검역을 Digital Surveillance(디지털 감시)라고 얕잡아 보고 싶었던 독일의 DW 방송에서도 배워야 한다. 한국의 방역 성공은 극도의 감시 덕분이라며 프라이버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신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던 한·프랑스 변호사의 기고문에 흥분하며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뒤틀린 안티 오리엔탈리즘(anti-orientalism)의 허구를 바이러스 앞에 치졸하게 드러내놓고 말았던 그들에게서도 배우자.

밤 11시까지인 영업 제한 시간을 넘겨 식당에서 와인을 즐기다 경찰에게 들키고 말았던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실소담도 그냥 웃어 넘길 일은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지키라고 명령한 법을 대통령 스스로는 어긴 셈이다. ‘솔선수범’이라는 지도자의 덕목과 와인 한 잔의 달콤함 중 ‘뭣이 중한디’를 물어 배워야 한다.

들판을 쏘다니며 유목 생활을 하던 조상들의 핏줄이 흐르는 유럽인들의 속성상 집에 있으라는 ‘stay home’의 슬로건은 감옥형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까짓’ 유행성 감기 같은 바이러스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것은 유목 생리상 받아들일 수 없다. 건성건성 지키던 자가격리 수칙도 조금 시간이 길어지자 유목민의 방랑벽에 무너지고 말았다. ‘코로나19는 가짜다’, 라며 봉쇄 해제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대와 경찰 간 난투극을 벌였던 베를린에서도 공권력의 위상을 곱씹어 보며 배워볼 일이다. '일자리와 빵을 달라' 며 팻말을 들고 거리를 메웠던 폴란드인의 분노의 목소리에서도 ‘나의 빵과’ ‘우리의 목숨’을 놓고 어떤 선택을 할 지 배울 수 있다.

집단 면역을 한다며 호언장담하다가 애궂은 요양원 노인네들만 희생시킨 스웨덴의 사례도 ‘서구 우월주의’의 허실에 대한 배움 거리로 빼 놀 수 없다.

펜데믹으로 서구인들의 자존심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반성이나 하면 다행이지만 이들의 알량한 자존심은 보란 듯이 저력을 보인 ‘오리엔탈’에 대한 반감으로 되살아 날지 모른다. 그 또한 우리가 대처하며 배울 일이다.

충격과 공포를 겪은 뒤 불안과 분노가 이어진다. 그리고 체념하고 적응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코로나 19도 언젠가는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바뀐다고 앞다퉈 말한다.

성공적인 방역 모범을 보인 한국의 위상도 엄청난 변화가 올 거란다. 참으로 우쭐해 지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하찮게 여긴 바이러스 앞에조차 우리는 겸손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더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뒤집어 보면 나의 스승이 된다’는 말, '반면교사反面敎師' 코로나 19가 우리의 도약을 위해 준 선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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