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문화로 이야기꽃]질문이 필요한 시대의 질문

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08월 06일 15시56분

지금은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한 시대다. 답은 이미 많은 사회실험 결과와 인공지능에 데이터로 담겨있다. 시대의 자랑인 기술이 이 모든 걸 가능케 한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더 뜻 깊은 질문이다. 여기에 던지는 질문 하나는, 바로 그 가능성이 진짜로 사람을 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무엇이 정말 좋은 사회인가. 어떤 시스템이 진짜 사람을 위하는가.

생태적 인본주의라는 말을 쓰고 싶다. 말은 낯설지만, 그 뜻은 오래되었다. 사람을 중심에 두되, 그 사람을 자연과 공동체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생활 속에 녹여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며 지속가능한 삶을 꿈꾼다. 이 가치 또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우리 사회 시스템을 새롭게 다시 짜야 한다.

지속가능하려면 먼저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 먼저 던질 질문은 경쟁 중심 교육이 여전히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시험과 성적은 빠르고 뚜렷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관계, 의미, 성장은 가볍게 무시된다. 생태적 인본주의라면 어떻겠는가? 여기서 묻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자연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 친구와의 협력은 어떤가. 교육 내용 중에서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은 얼마큼 존중받고 있는가. 인간적 성숙은 성취에서 오는가 아니면, 세계와 관계를 맺는 감수성에서 오는가.

경제는 또 어떤가. 효율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원을 끊임없이 소모하고 있다. 인간은 상품 소비자로만 정의되고 있다. 일거리나 일자리도 일의 의미보다는 ‘성과’로 측정된다. 생태적 인본주의에서는 어떤 길을 제시할까? 경제와 삶의 관계에서 경제를 삶의 토대로 봐야하지 않는가. 경제활동이 삶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일은 단순한 소득 수단이 아니고, 자아실현의 실천현장이 되어야 한다. 지구생태계를 이토록 훼손하는 생산 방식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인류를 몰아가는 것 아닌가. 기업들은 이윤보다 윤리, 사회관계자본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이야기는 지면이 아깝지만 역시 다시 봐야 한다. 비전없이 반응만 하는 정치, 숫자와 여론에만 몰두하는 정치는 끝내야 한다. 유권자보다 느리지만 깊이 있게 관찰하는 주민정치가 필요하다. 정책은 단기과시 효과가 아닌 세대 간 공동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생태계의 흐름, 공동체의 소리, 침묵하는 소수에 귀 기울이는 정치. 생태적 인본주의는 말한다. 진짜 민주주의란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향한 무한책임이다.

사회문화는 무엇보다 생태적 시선으로 다가가야 할 부분이 되었다. 삶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에게 문화는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자극적이고 돈 곁에 붙어있는 예술보다,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는 예술에 주목해야하지 않는가. 개개인을 돌아보게 하는 예술적 감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사회관계를 맺게 하는 미래 전통이 필요하지 않는가. 사회문화가 도시를 넘어서 시골, 세대를 넘어 노인과 아이에게까지 뿌리내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태적 인본주의라는 말은 우리 사회 모든 시스템을 향해 쎈 질문을 던진다. 정책 당국이 설계한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시스템은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그 변화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가. 단지 새롭게 반짝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지켜야 할 것에 집중하는가. 시스템 전통은 과거가 소중한 만큼 미래의 것에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속도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속을 고민해야 한다. 변화의 앞에 있는 지금이야말로, 의미 있는 진보가 무엇이며 의미 있는 보수가 무엇인지 되물어야 한다. 그 안에 사람과 자연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터를 마련해야 할 때다. 이 쓰나미물결 앞에서, 생태적 인본주의는 기술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골든타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 길은 이미 늦었지만, 버리면 안되는 질문들을 자꾸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래야 충분히 온도와 향기를 나눌 수 있고, 단단하며, 오래간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이흥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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