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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의 희생양이 된 정여립의 생가는 어디일까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6월 24일 14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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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 황해 감사로부터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는 비밀 서장이 조정에 접수되었다. 그가 있는 곳을 관할하는 전주부윤이나 진안현감, 심지어 전라감사까지도 전혀 모르는 금시초문이었다. 당시 정여립은 홍문관 수찬으로 있다 물러나 고향인 전주와 진안을 오가며 대동계를 조직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유유자적하는 중이었다. 진안 죽도에는 그의 서실이 있었다.

처음엔 작은 소동 정도로 끝나려니 했는데, 동인과 서인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사건은 눈덩이 불어나듯 점점 커져 초대형 옥사가 되고 말았다.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기초로 한 기축옥사의 시작이었다. 주로 동인 계열의 선비들이 희생당했고 사회 분위기는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임진왜란을 맞이했으니 분열된 국론을 한곳으로 모으기 어려웠을 것은 자명하다.



정여립은 역모를 꾀한 죄목으로 두 번 죽었다. 토벌군에 쫓기다 진안 죽도에서 한번 죽고, 그 시체를 가져다 한양 군기시 앞에서 다시 추형한 것이 두 번째 죽음이다. 이때 백관을 차례대로 세워놓고 역모를 꾀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도록 하였다. 왕조실록은 그를 역적으로 기록해 놓았지만 비밀 서장이 조정에 접수된 경위, 당시 동인과 서인의 치열한 당파싸움, 정여립의 올곧은 성격 탓에 선조와 불화를 겪었던 점 등을 살펴볼 때 실제 역모를 꾀했는지 여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무튼 그는 전주 사람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실록 편찬은 예문관과 춘추관에 소속된 전임사관과 겸임사관들이 맡고, 의정부와 육조, 홍문관, 승정원, 사헌부, 사간원 등에서도 편찬 업무를 지원했다. 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출신 가문에 문제가 없고, 유교 경전을 통달하고, 통찰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서술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은 도청(都廳)과 삼방(三房)으로 구성되었다. 각 방에서 사관들이 사초 및 시정기, 승정원일기, 그리고 지방 관청에서 보고한 문서 등을 종합하여 초초(初草)를 작성하여 올리면, 도청에서 잘못된 곳을 고치고 수정한 중초(中草)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총재관과 도청 당상이 검토하여 수정하면 최종 원고인 정초(正草)가 탄생하는 것이다. 3단계를 거치게 되므로 내용이 상당히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견해가 다르게 기록될 수는 있어도 출생지라든가, 벼슬에 대한 자료는 왜곡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서 편찬의 중책을 맡은 사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으니 기초자료를 허술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조수정실록에 정여립은 ‘선조(先祖) 때부터 전주 동문 밖에 거주하였는데 가세가 한미하였다’, ‘왕기가 전주 동문 밖에 있었다’고 하였다. 또 택당집은 ‘당시에 정여립이 전주성 동쪽에 거처하고’ 있었으며, ‘그가 살던 곳도 영문(營門)과 겨우 30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적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기축록에 ‘전주를 왕래하게 되면 역적의 집이 큰길가에 있으므로 찾아가 만났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여립의 생가는 전주 동문 밖에서 진안 무주를 가는 큰길가 30리쯤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다만, 연려실기술과 혼정편록에 어떤 연유로 그가 전주 남문 밖에 살았다고 기록되었는지는 몰라도 이는 실록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정여립과 관련된 사건들을 따라가면 실록의 기록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전주 동문 밖 송광사의 승려 성희가 삼일암에서 역모의 또 다른 모주라는 길삼봉과 모의하였고, 정여립의 누이가 진안 소리실로 시집갔다는 설, 정여립이 죽은 죽도가 소리실 바로 옆이라는 점을 두고 볼 때, 그의 생가는 전주 동문 밖이라고 봐야 한다. 그가 어렸을 적 뛰어다니며 놀던 곳이고 익숙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서를 가지고 나서면 전주 동문 밖 30리쯤 큰길가에 있었을 정여립의 생가를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소설가 박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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