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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발걸음]고인돌, 무덤 너머 우주를 담은 '거석 코드'로 읽기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5월 26일 15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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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곳곳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한 고인돌. 오랫동안 우리는 이 거대한 돌 구조물을 선사시대 사람들의 무덤, 즉 ‘지석묘’로 단순하게 이해해 왔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굳어진 이 해석은, 이후 한국 고고학계에서도 별다른 비판 없이 답습되어 교과서 속에서도 여전히 고인돌은 ‘무덤의 형식’으로 소개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과연 고인돌은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침묵의 공간에 불과했을까? 십 수 년간 전국을 누비며 고인돌의 비밀을 파헤쳐 학계의 오랜 통념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고인돌을 단순한 매장 유적이 아닌, 삶과 죽음, 우주와 공동체를 꿰뚫는 고대인의 철학이 응축된 ‘거석 코드’로 재조명하였다. 고인돌이야말로 선사시대 사람들의 세계관, 자연관, 인간관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신성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은 고인돌의 배치 방식과 방향성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거대한 돌들은 결코 무작위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천문 지리 원리에 따라 배열되었다. 많은 고인돌에서 발견된 춘분, 추분, 하지, 동지와 같은 태양의 움직임과 정교하게 일치되었으며, 해가 뜨고 지는 방향, 심지어 별자리와 그 이동까지 반영하고 있었다. 이는 고인돌이 단순히 매장을 위한 표지만이 아니라, 하늘의 움직임을 땅 위에 구현한 ‘농사력(農事曆)’이자 시간의 나침반, 즉 계절과 절기를 관찰하고 예측하는 천문 도구로 기능했음을 의미했다. 농경 사회였던 선사 공동체에게 있어 정확한 계절 예측은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지식이었으며, 고인돌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닌, 자연의 리듬을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생명의 도구’였던 것이다.

나아가 고인돌이 세워진 주변 지형과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고인돌의 입지는 인근의 자연 지형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으며, 특정한 방향으로 솟은 산, 물의 흐름, 혹은 고개를 향해 정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배치는 고인돌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동시에 고려한 성스러운 공간, 즉 선사인들이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 공동체의 질서를 반영한 일종의 성역(聖域)으로 계획되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공간 인식은 훗날 한반도 풍수지리와 도읍지 선정, 사찰과 능묘 배치에 영향을 미쳤으며, 고인돌은 한국적 공간 철학의 심오한 뿌리를 형성했다.

고인돌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닌,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제의의 장소였으며, 천문 관측과 계절 예측이 이루어지던 복합적인 의례 공간이었다. 선사인들은 매년 고인돌 앞에 모여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풍요로운 농사를 기원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재확인하는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에게 고인돌은 죽은 자를 위한 슬픔의 공간이 아니라, 산 자들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통로였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상징의 자리였다. 이는 선사인들이 삶과 죽음, 낮과 밤, 계절과 절기,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 했던 심오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러한 고인돌 문화가 한반도에 국한된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집트, 마야, 잉카의 피라미드 등 세계 곳곳의 거석 구조물들 역시 유사한 천문학적, 우주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 보편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이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훨씬 이전부터도, 하늘을 관찰하고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며, 공동체를 조직하고 그 가치를 상징적인 구조물에 새기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필자의 졸저 『하늘의 길, 고인돌에 새기다』는 고인돌을 둘러싼 낡은 고고학적 해석에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학제 간 융복합하여 새로운 ‘고인돌학’의 탄생을 알리는 작업이었다. 이 책을 통해 고인돌을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닌, 고대 사회의 철학과 삶, 그리고 우주에 대한 깊은 인식이 응축된 복합적인 사유 구조물로 재해석하고자 했으며, 이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선사인들의 정신세계를 현재의 우리에게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이병렬(고창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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