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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구산성, 후백제 시기 ‘큰 우물’ 존재 확인

수도 완산주 방어했던 핵심 산성, 시굴조사 통해 역사적 가치 부각

기사 작성:  백용규 - 2025년 04월 14일 12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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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일원과 금구산성이 후백제 시대 정신적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주목받고 있다.

김제시는 지난 10일, 금구산성 시굴조사 성과 공유를 위한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그간의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금구산성은 금구면 남동쪽 봉두산 정상부를 감싸고 조성된 테뫼식 산성으로, 조선시대에는 ‘봉두산성’으로도 불렸다. 산성 주변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기와편, 도기편 등 다양한 유물이 다수 확인되어 군사시설로 활용됐던 관방유적으로 주목받아 왔다.

봉두산 정상에서는 정읍, 익산, 군산, 완주, 부안 등 서남부 평야와 해안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특히 수도 완산주 방어에 최적의 위치로, 금구산성이 후백제의 수도권 방어를 위한 핵심 거점이었음을 뒷받침한다.

이번 시굴조사는 김제시가 조선문화유산연구원의 의뢰를 통해 산성 주둔군이 식수 확보를 위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수정지(큰 우물)’와 석축 등 삼국~후백제 시기에 쓰여진 유구와 유물들을 확인했다.

상시 전시체제였던 후백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금구산성은 완산주 서남부를 방어하는 주요 관방유적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구체화되었다는 평가다.

시는 이번 학술자문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밀 발굴조사로 전환하여 위치할 가능성이 있는 군사시설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성주 김제시장은 “금산사 일원이 후백제 시대의 정신적 중심이자 금구산성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입증하는 이번 조사 결과는 큰 의미가 있다”며 “국가유산으로서 금구산성이 김제시민의 자긍심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존‧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김제=백용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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