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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발걸음]긍정(肯定)의 아름다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3월 09일 20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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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이란 어떤 사실이나 생각에 대하여 옳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간혹 사람들은 “긍정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라고 말한다.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을 수긍이라고 한다.

하얀 종이에 검은 점을 10개 정도 찍은 후에 그 종이를 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검은 점 10개에 머물기 십상이다. 사람의 코 위에 점 하나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 점을 바라본다. 점보다 훨씬 넓은 부위의 피부가 많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지나가면 그 사람의 걷는 발 모습만 본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사고와 시야는 훨씬 넓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는 긍정할 수 있는 부분 대신에 좁은 부분인 얼굴의 점(點)이라고 하는 부정 부분에 관하여 시야를 묶어둔다. 즉, 상대의 장점보다는 상대의 단점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단점을 보고서 그것을 가리키는 것을 지적(指摘), 혹은 좋지 않은 뜻으로 지적질이라고 한다. 지적(指摘)은 손가락질해서 가리킴이란 뜻으로 남의 허물을 들추어 폭로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가정, 학교, 직장, 기관에서 상대방이나 타인의 언행에 대하여 지적하면서 험담한다. 심지어 아내와 남편을 물론이고 동생, 언니, 형님, 선배님들한테 지적한다. 나아가서 노부모(老父母), 시부모(媤父母), 시숙, 시누이를 가릴 것 없이 지적질을 한다. 지적질을 하는 사람은 결코 존경받지 못한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당한다. 남들의 눈 속에 들어 있는 티(speck)는 잘 보면서 자신의 눈에 든 들보(log)는 깨닫지 못한다. 깨끗한 하얀 종이는 보지 아니하고 그 안에 찍은 점들만 본다. 곰보 총각이 미팅에 나가서 앞에 앉은 아가씨의 하얗고 고운 얼굴은 보지 아니하고 죽은깨만 보다가 비웃으며 돌아온다. 자기 얼굴 얽은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지인 중에는 매월 모임을 하는데 만나자마자 상대방을 칭찬하는 모임이란다. 일단 인사를 하고 바로 칭찬이 시작된다. 그 모임은 칭찬으로 시작하여 온통 웃음바다로 끝이 난다. 회원들은 모임에 나가기 하루 전부터 곧 만날 친구들의 칭찬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회원의 숙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숙제이다. “예쁘다.”, “이해심이 많아.”, “착해.”, “예의가 바르다.”, “효자로군.”라는 정도면 훌륭하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 한나절을 웃으면 1년은 젊어진다.

네 살 위인 존경하는 선배님이 있다. 그 형님은 모든 생각이 긍정적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럼”, “그냥”, “그러려니”라는 말을 주로 쓰신다. 그분은 후배가 무슨 말을 하면 “그렇지!”, “그럼!” 하면서 긍정의 추임새를 넣으시며 ‘우쭈쭈’를 해주신다. 어떤 불평을 말하면, “글쎄, 동생! 그러려니 해, 좋은 말만 하다가 죽으려 해도 시간이 모자라.”라고 하신다. 긍정적인 사람은 겸손하다.

원래 긍정은 겸손을 유발한다. 긍정이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잘남도 못남도, 똑똑하고 모자람도, 잘생기고 못생김도 자비와 용서로 받아들인다. 긍정적 사고는 결점을 보기보다는 모든 것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고 한없이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고, 상대를 높이 받들어 존경한다.

인생사에 정치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야의 대치 정국은 끝없이지속되어 왔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줄곧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논리정연하게 정략을 펴고, 점잖게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에 반해, 요즈음 정치가의 말은 거의 무논리(無論理)다. 말도 아니고, 글(sentence)도 아니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을 이루지도 못한다.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다. 상스런 욕설이 난무한다. 역사상 가장 수준 떨어지는 정치가들이다. 여야간 정쟁(政爭)하다가 그도 안 되면 단식(斷食)을 한다. 단식은 위험하다. 오죽하면 단식할까 하가다도 쇼맨십인가도 싶다. 왜냐하면 원래 단식은 종교적인 깊은 의미를 지닌 의식이다. 기독교에서는 사순절에 단식한다. 그것은 회개(悔改)와 보속(補贖)의 의미가 있는 의식(儀式)이다. 불교에서도 깊은 성찰을 통해 자기반성을 하고 남들에게 보시를 베풀어 성불하려는 일이다. 라마단은 이슬람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월 중 하나로 특별한 시기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실천하며, 기도와 자선, 자기성찰에 집중한다.

제발 단식을 정략적인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을 일이다. /유종국(전 전북과학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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