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전주(全州), 중흥과 시작의 콘텐츠에 대한 단상(斷想)

이종철 전북대 겸임교수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7월 10일 13시31분

전주(全州)는 조선왕실의 본향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전주 이씨 이성계(李成桂, 1335∼1408)요, 그의 시조 이한(李翰)을 모신 곳이 전주 조경묘(肇慶廟)와 조경단(肇慶壇)이지 아니한가.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믿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설화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 중에 고려 말 이성계의 대풍가(大風歌)가 있으니, 전주 오목대를 배경으로 한다. 또 조선의 여러 왕들이 경기전에 모셔져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바로 전주다.

왕실 본향인 전주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를 만나 볼 수 있는 곳은 경기전 안에 있는 어진박물관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대왕의 초상화를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원적 사료라는 점과 한정된 전시 공간이라는 점에서 태조의 아우라를 온전히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아우라(Aura)는 예술작품에서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말한다. 고려 말 이성계의 아우라는 그 어떤 인물과도 비견되지 않는다. 비록 정몽주(1338∼1392)와 최영(1316∼1388) 장군이 고려 말을 대표하는 문무(文武)의 아이콘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역사적으로 탄력받은 이성계의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한다. 황산대첩비문(荒山大捷碑文)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묘사된 그의 모습은 이미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지 아니한가.

최근까지 여러 지자체에서는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세워 지역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은 단연 으뜸이다. 의정부시는 2009년에 의정부(議政府)라는 명칭 유래를 바탕으로 이성계의 용맹, 진취, 개혁성을 본받아 행복특별시로의 영원한 도약을 기원하고자 갑옷을 입고 말 달리며 활을 쏘는 이성계 기마상(騎馬像)을 행복로에 세웠다. 공주시는 올해 2월 공산성 회전교차로에 9.5m나 되는 백제 무령왕(武寧王) 동상을 세우면서 무령왕의 갱위강국(更爲强國, 다시 강한 나라가 되다) 의지를 공주시 발전의 밑돌로 삼아 중부권 문화수도로 거듭남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상 세우기 사업은 이러한 발전적 사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구시는 2017년 달성공원에 7억 원을 들여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純宗)의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7년만에 아파트 단지 신축으로 주민 보행에 방해되고, 교통안전을 위협한다는 민원이 제기되어 철거되었다. 또한 동대구역 등에 14억여 원을 들여 친일, 독재, 부패의 아이콘인 박정희 前대통령의 동상을 세운다고 하여 시민단체들과 옥신각신하고 있는 상태다. 이뿐이랴. 국방부에서 추진했던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 흉상 철거 계획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이념 논쟁 불구덩이에 기름을 부어 온국민을 갈등과 대립의 용광로 속으로 밀어넣기도 했다. 동상 세우기의 명분과 그 합목적성을 염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새로운, 또 하나의 콘텐츠로 검토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바로 조선왕실의 본향, 대풍가, 조선 태조어진의 주인공인 이성계의 동상이다. 왕실본향의 중추적인 증거요, 세기의 중흥과 시작이라는 아이콘으로 삼을 만하다는 점에서 조선 태조상(太祖像)은 전주에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특히 2024년이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원년이라는 점에서도 중흥과 시작의 동력으로 삼을 만하다. 만약 국보로 지정된 어진(御眞)에서 태조상이 깨어 나와 3차원적으로 구현된다면, 조선 왕으로서의 이성계 동상은 역사적 고증을 거친 첫 사례이자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이다. 다만 동상 설치의 배경과 목적을 널리 알리고, 설치 여부와 장소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도처(到處)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세종대왕의 성업(聖業)을 거울 삼을 수 있다면, 전주에서는 태조대왕의 대업(大業)을 미래로 가는 동력으로 삼아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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