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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속 클래식]........그림 속 클래식 vol.2-1 고전

-베토벤과 고야 / 폭풍속의 고독

“고뇌를 뚫고 나아가라, 환희를 향해서”-베토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7월 01일 14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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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장마의 폭우에 간절히 부여잡은 우산이 금새 의미가 없어진다. 세상을 온통 삼키려는 듯 무섭게 내리는 비 속에 어찌할 바 없이 고립되어 이내 공포와 무력함을 느낀다. 굵고 세찬 빗줄기에 둘러쌓여 세상과 단절된 시간, 외려 적막함과 고독이 느껴진다.

자연의 힘처럼 인간을 압도하는 거센 운명에 맞선 두 예술가가 있다. 불굴의 의지로 시련과 역경을 헤치고 치열한 예술혼으로 인생을 살아내며 불후의 작품을 남긴 두 예술가. 바로 고전파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과 동시대의 화가 프란시스코 드 고야(Francisco de Goya,1746-1828)이다.



두 사람이 살았던 18세기 후기와 19세기 초는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18세기 초 태동된 계몽주의와 자유주의가 당시 유럽의 정신을 주도하였고 이는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전쟁 등을 통해 온 유럽에 들불처럼 퍼졌나갔다. 특히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양식은 예술에 자유와 혁명의 정신을 한껏 더했다.

또한 가속화되는 구체제의 몰락 속에 증기기관과 전기 등 새로운 산업과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는데 이에 따라 권력의 중심은 산업혁명을 통해 부를 쌓은 중산층에 그 무게가 옮겨졌다, 이들은 곧 주요 문화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들이 주도하는 공개 연주회가 활발해졌으며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의 보급이 확산되었다. 음악 인구가 증가하고 악보 출판이 활발해지며 음악가들은 명예와 부를 쌓을 수 있어 위상이 높아졌고 독립적인 예술활동이 가능해졌다.







-악성(樂聖) 베토벤



베토벤은 인류사에 손꼽히는 대작곡가이다. 바흐를 통해 집대성되어 전해오던 서양음악의 전통은 빈고전파의 대표적 작곡가 하이든, 모차르트를 거쳐 베토벤에게로 응집되었다. ‘나의 음악은 미래를 위한 음악이다’라고 말한 베토벤의 말처럼 그의 음악은 후대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슈베르트, 리스트, 브람스 등 수많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그를 숭배했으며 특히 브람스는 자신의 첫 번째 교향곡 발표를 종용하는 지인에게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을 ‘등 뒤에서 들리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로 비유하며 ‘내가 이에 무엇을 더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베토벤 음악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베토벤은 ‘운명’, ‘합창’, ‘황제’, ‘크로이처’ 등 수많은 역작을 남겼으며 그 중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건반음악의 신약성서로 여겨진다. 또한 그의 음악은 인류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택해져 우주로 보내진 바 있으며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있다. 특히 이 곡은 인류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가져와 인류애의 평화, 자유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기악과 성악을 결합시켜 교향곡의 지평을 넓혀주었고 후대 작곡가인 바그너, 브루크너, 브람스, 말러등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베토벤은 숭고한 음악적 업적에 더해 자신이 남긴 음악처럼 열정적이고 치열했던 삶을 살았는데 이는 후세에 많은 영감을 줘 프랑스의 작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그를 모델로 해 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남겼으며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영웅의 생애’로 추앙받는 베토벤의 삶이지만 그 또한 우리의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이기도 했다. (로맹 롤랑의 작 ‘베토벤의 생애’의 부제가 ‘위대한 투쟁’이다.)

어린시절엔 폭군인 아버지에게 혹사당했고, 동생과 조카 카를을 비롯한 가족들과는 법적 분쟁 등 내내 불화를 겪었다. 귀족들의 존경과 후원을 한 몸에 받는 성공한 음악가였지만 결코 고개숙이지 않는 꼿꼿한 자존심과 난폭한 성격은 그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때 영웅이라 생각했던 나폴레옹이 드리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신음했으며 안정적인 작곡 여건을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했다. 자신의 음악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재정 마련에 쩔쩔매기도 했고, 연주 당시 외면받은 작품도 적지 않았다. 청각장애 외에도 평생에 여러 질병을 달고 살아 큰 수술을 네 번이나 하였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였고 기다리던 고향의 와인이 도착했을때는 이미 임종이 가까워져 한 모금 마실 수도 없었다. 또한 ‘불멸의 연인’들이라 불리는 여인들과의 애달픈 사랑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베토벤이 진정으로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고통스런 삶에 기반한다. 청년 시절부터 음악가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청각장애가 느껴졌고

이를 비밀에 부친 채 치료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오히려 더 악화되어가는 현실에 극심한 좌절과 고통을 겪는다. 폭풍처럼 다가온 운명 속에 고립된 베토벤은 한때 삶을 포기하고자 마음먹기에 이르렀고 결국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남긴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은 채 가슴 깊숙히 간직했던 이 유서를 통해 베토벤은 다시 부활을 꿈꿨다. 방랑자가 세찬 비바람을 뚫고 힘겹게 나아가듯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 당당히 맞서 나아갈 것을 결심한 베토벤은 예술에의 헌신을 다짐하며 더욱 작곡에 매진한다. 그 결과 마침내 교향곡 3번 ‘영웅’을 필두로 명작들이 쏟아지는 ‘걸작의 숲’시대가 열리게 된다. 베토벤은 불굴의 의지로 엄청난 창작열을 불태웠으며 ‘바이올린 협주곡’, ‘운명’, ‘전원’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4번 등의 명곡들을 발표한다.

베토벤의 청각장애는 그를 더욱 치열하게 예술세계에 몰두하게 해 그 어느 때보다 깊이있고 혁신적인 작품들을 탄생하게 했다. 베토벤은 “연주하고 작곡할 때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음악에 완전히 몰입했고 이를 통해 그는 잠시나마 해방되고 치유될 수 있었다.







-근대회화의 창시자, 고야

베토벤처럼 극심한 청각 장애를 앓으며 자신만의 예술세계에 천착했던 이가 있었으니 스페인의 화가 고야(F.Goya)이다. 고야는 근대 회화의 지평을 연 인물로 그의 작품들은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마네, 피카소와 같은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고야 또한 심한 청각장애를 앓았으며 이에 더해 여러 정치적 상황, 특히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한 혁명과 전쟁의 광기과 같은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받았다. 베토벤과 동시대를 살며 자신이 마주한 운명을 물감과 붓에 의지해 극복해 내고 결국 캔버스 위에 불굴의 예술로 꽃 피워낸 화가 고야의 삶은 어땠을까.



2편에 계속



글 / 이주용 (전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Xkj0TeZeZ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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