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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발걸음]고창 상하 검산 고인돌의 성혈과 하지 기우제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6월 24일 15시39분

여름이 오기 전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온 세상이 푸르른 녹음으로 짙게 덮인 무더운 여름이 되면 무엇이든 조사하기가 어렵다. 지금 조사하고 있는 고인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많은 고인돌들이 구릉이나 산사면, 전답에 있다 보니 여름이나 가을의 고인돌 답사는 애로사항이 많다.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답사하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고인돌 조사 중 아주 깊게 많은 바위구멍을 새긴 것을 찾았다. 근래 이렇게 예쁜 고인돌을 처음 보는지라 흥분되었다. 이 고인돌은 고창군 상하면 검산에 있는 고인돌로 두 기가 있었고,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아 큰 기대 없이 찾았다. 고인돌의 규모가 작은 관계로 무시하고 간단하게 고인돌이 가지는 천문학적 해석과 사진만 찍고 얼른 떠나려 했다. 일을 마치고 떠나려는 순간 고인돌 위에 뭔가 보이는 것 같아 경사진 곳에 있는 고인돌 덮개돌에 올랐다. 고인돌 위에 오르니 이게 뭔 일이야! 그곳에는 수많은 바위구멍이 있었고, 그 덮개돌 중앙으로 인위적으로 파낸 도랑과 같은 줄이 깊게 새겨 있었다.

고인돌에 새겨진 바위구멍을 보통 성혈이라 부르고, 한자로 性穴(cup-mark)로 썼다. 그러나 최근 연구자들은 별 성자를 써서 星穴이라 부른다. 이는 고대 거석인 고인돌이 천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천문학계의 정설이다. 선사인들이 당시의 자연환경과 사회상을 반영한 일종의 종교적 행위로 고인돌의 덮개돌 표면에 어떤 특정한 도형을 새긴 것을 별자리인 성혈이라 부른다. 몇 분의 천문학자와 철학자가 고창 고인돌에서 별자리인 성혈을 찾고자 노력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이 성혈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 죽림리나 상갑리 및 상금리와 같이 대규모로 군집해 있는 고인돌군에서 성혈을 찾는다. 그러나 고인돌이 대단위로 군집한 곳은 고인돌들 자체가 은하수이거나 삼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의 별로 보았기에 때문이다. 고인돌 하나하나에 별자리를 새길 이유가 없으니, 성혈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성혈이 새겨진 고인돌은 장축이나 통로가 동남쪽이나 남서쪽 및 북쪽으로 향한 것에 주로 나타난다. 이는 삼천여기 이상의 고인돌을 조사해 얻은 ‘이병열의 고인돌론’ 중 하나이다. 고창 검산리 고인돌에 수많은 성혈이 새겨 있고, 이를 은하수로 해석하고자 한다. 덮개돌 중심의 굵은 선은 밤하늘의 대하천인 은하수인 미르로 보인다. 이 고인돌의 장축은 하지 일출인 60° 전후이고, 반대는 동지 일몰 방향이다. 대부분 남서쪽인 210°나 남동쪽인 160° 전후에 성혈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최근 이 고인돌처럼 장축이 하지 일출 방향의 덮개돌에 성혈을 새긴 것들이 여러 기가 발견되었다. 한편 바로 옆 고인돌에서 성혈이 있는 고인돌의 방향은 150°이고, 송림산의 고개와 일치했다.

선사인들이 하지 일출 방향으로 놓은 고인돌 위에 성혈을 새긴 이유는 기상과 관련이 깊은 듯하다. 하지 전후로 씨를 뿌리고 싹이 트면 물이 필요하다. 이때 강우량이 적거나 가뭄이 들면 일 년 농사를 망친다. 이 시기의 비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생명줄이다. 지금처럼 저수지를 만들고 지하수를 파서 물을 공급하는 시대도 하지 전후의 물 부족은 국가적 재난이다. 특히 상하 검산리 일대는 산이 낮고 바다가 가까워 물이 늘 부족하다.

선사시대 제사장이나 족장은 하지 전후 밤하늘의 은하수나 별자리를 보고 기상을 관측하여 예보하고 풍흉을 예측했다. 고인돌은 하지 전후 선사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드렸던 성소다. 은하수가 너무 맑고 선명하면 가뭄으로 걱정하고, 은하수가 너무 흐릿하면 홍수로 걱정했을 선조들의 마음이 고인돌의 성혈과 깊은 도랑에서 읽힌다.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에 의탁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풍년의 간절함을 미르인 은하수에 담아 풍년을 기원했을 선인들의 제례행위가 담겼다. “인류는 미개한 적이 없다”라는 철학적 명제처럼 고인돌을 만들었던 선사인들은 이미 수천 년 전 하늘의 움직임을 다 알고 있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긴 은하수가 이를 말하고 있다.

/이병렬(고창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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