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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재발견]살아남은 자들의 말들, 이세종을 기억하라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3월 19일 14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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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견디다 못해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아픈 기억은 잊고, 또 잊으려 노력하며 안온한 일상을 꿈꾸는데 누구에게는 그것조차 사치이고 죄악이다. 이세종도 마찬가지다. 이세종은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전두환의 이름으로 포고된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따른 전국 최초의 희생자다. 이세종의 죽음은 광주에서 공수부대에 의해 자행될 살육의 첫 장면이고, 1987년 6월항쟁과 6.29 선언까지 이어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수없이 희생된 죽음의 예고편이다. 1980년대 초반 그 이름은 금기였고 그를 회상하는 것도 범죄였다. 더욱이 그 이름을 거론하며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혁명을 꿈꾸는 불온한 행위였다. 이세종 연구에 천착해 온 전북대 김정원 교수는 이세종을 기억하는 것은 1980년 오월민중항쟁을 지역적으로 광주, 시기적으로 5월 18일부터 전남도청이 함락당한 5월 27일까지 열흘 동안의 사건으로 제한하려는 시도에 맞서 항쟁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전북지역의 기억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기억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누군가와 나누지 않는다면 그 기억은 왜곡되고 단절된다. 이날 학생회관에서 전두환 퇴진과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이세종과 함께 농성장을 지키다 35사단으로 잡혀간 김성숙은 회상한다. 2학기 개강 후 학교로 돌아온 그녀에게 학생과 교수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학생회관 농성장에서 착검한 군인들에게 개머리판으로 찍히고 곤봉으로 맞으며 끌려간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고초가 심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김성숙은 살아있는 유령이었다. 그 뒤 그녀는 말을 잃었다. 이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스무 살 어린 여학생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육체적 고통과 법률적 불이익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자신을 기억하지 않는, 기억을 공유하려 하지 않는 침묵이었다.

이세종의 친구인 김형근의 기억은 달랐다. 오월이 되면 그는 미쳤다. 자신을 포함해 살아남은 그 누구도 모두 죄인이고 용서할 수 없었다. 밝은 햇살과 꽃의 향기는 그의 죄의식을 돋구는 도구였다. 봄이지만 밤공기가 차가운 5월 17일 밤, 막걸리를 사서 가져오라는 선배의 부탁에 농성장을 빠져나온 그가 막걸리 주전자를 가지고 되돌아갔을 때, 교문은 이미 군인들에게 막혀 있었고 학생회관은 포위되어 있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죽지 못한 것을 못 견뎌 했다. 그래서 오월이 되면 참을 수가 없었다. 마이크를 쥐고 막걸리를 사러 간 자신이 세종이를 죽였다고 울며 괴로워했고, 도망가라고 강요하지 않은 선배들을 원망했다. 교사가 되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역사교육차 학생들과 함께 회문산을 찾았고, 거기서 올린 막걸리 한잔을 문제 삼아 국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중학생들에게 빨치산을 찬양하라고 가르치는 빨갱이 교사라며 감옥에 가두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이길 수 없었다. 온몸에 퍼진 암세포가 그를 친구에게 데려갔다.

이세종의 중학교 동창 김중길은 학생들의 직접선거로 전북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되었다. 그는 전북대학교 교정에 이세종 추모비를 세우기로 하고, 흰돌 강희남 목사에게 비문을 받아 천막을 치고 밤샘 작업을 하여 1985년 5월 18일 이세종 열사 추모비를 세웠다. 그해 여름방학에 추모비는 학교 당국에 의해 김제 묘소 앞으로 옮겨졌으나, 우여곡절 끝에 2003년 전북대학교로 되돌아왔고, 1998년 5.18 관련 사망자로 인정받은 그의 유해는 1999년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치되었다.

전북대 총동창회는 최근 이세종 열사가 국가로부터 5.18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로 공식 인정받은 것을 시점으로 이세종 열사 추모사업회 구성에 나섰다. 열사가 희생된 지 44년 만이다. 이세종 외에도 우리가 물어야 하는 죽음이 많이 있다. 이유를 묻고, 경위를 묻고, 과정을 묻고, 결과를 묻고, 끼친 영향을 묻고. 묻지 않는데 답할 수 없다. 묻지 않는다면 침묵을 강요하는 진실을 묻어 버리고 싶은 그들과 한편이 된다. /이진일 (전북 미래 혁신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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