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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스미의 미술산책]〈54〉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튕겨 오르는 물줄기의 섬세한 선들이 적막을 깨고
미묘한 감정이 일고 알 수 없는 허무가 흐르는 나무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3월 06일 13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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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첨벙’, 1967, 캔버스에 아크릴릭, 242.5×243.9cm



△‘와터 근처 더 큰 나무들’ 연작중, 2008, 런던 테이트미술관



호크니는 우리 시대 슈퍼스타다. 그의 전시에 한국인들도 길게 줄을 선다. 호크니의 그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끌리게 한 것일까? 호크니가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첫 전시부터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사랑받는 영국의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1937-)다. 예술가의 인기와 재능의 척도는 무엇일까?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낙찰가가 절대적 평가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와 파급력은 증명한다. 예술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빛의 발산을 해석하는 감각적 능력이다. 이 민감한 감각을 가진 작가로 산다는 것은 행운을 넘어서 축복이다. 호크니, 그가 그렇다.

우리는 눈부신 환경에서 산다. 그러면서도 고독과 소외라는 어둠의 자화상을 안고 허덕인다. 이를 적나라하게 재현한 그의 다 초점 시점의 작품은 초현실적 공간에서 암묵적으로 시간을 정지시킨다. 자신의 고독과 직면한 관객이 비상구를 찾는 건 개인의 몫이다. 굵은 선과 강렬한 색채의 호크니 풍경화는 생기마저 있는 듯 없는 듯 적막하다. 그의 작품은 시각과 촉각이 함께 일으키는 공감각적 파장이 있다. 두 가지 생경한 느낌의 시간을 묶어 하나의 앵글로 잡아내는 천재다. 호크니의 파노라마 그림 속에서 관객은 홀로 걷는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나만 홀로 서 있는 착각이 든다. 그가 그린 나무와 들판, 여명의 순간들은 관객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고 세계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질문한다. 가장 혁신적인 작품으로 호크니답게 대답한다.

대학원 시절, 당시 불법이던 동성애를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초기 음산한 색과 환영적인 공간을 특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든다.

호크니는 1964년부터 LA 산타모니카로 이주하여 도시를 그린다. 흐리고 차가운 날씨의 런던에 비해 밝고 여유로운 풍광에 푹 빠진다. 작품 ‘더 큰 첨벙’은 캘리포니아의 햇빛을 담은 개인 수영장이다. 아크릴물감이 주는 얇은 표면과 밝은 색감의 경쾌함이 비현실적이다. 테두리 여백은 관람자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평면을 극대화한 장치다. 두 그루 야자수와 통창에 비치는 낮은 건물, 군중 속에 고독을 안고 사는 인간의 외로움을 대변한다. 수평과 수직의 건물이 다이빙대와 균형을 이루어 묘한 편안함을 준다. 하늘과 수영장의 더없이 영롱한 푸른 물의 대비, 튕겨 오르는 물줄기의 섬세한 선들이 적막을 깬다. 뛰어들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인다. 의자도 달랑 한 개다. 결코 감상적이거나 동정적이지 않다. 극도로 절제된 객관적인 시선이 전부다.

기하학적 면과 깊이감이 특징인 호크니 추상은 21세기 들어 그랜드캐니언과 요크셔 풍경화로 발전한다. 그의 풍경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기념비적 작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50개의 캔버스로 구성한 연작이다. 지면의 작품은 캔버스 9장 그림이다. 호크니는 눈이 여러 개다. 3차원 세계를, 움직이는 초점으로 대상을 포착하여 현실화시킨다. 그의 나무는 규칙적으로 뻗지 않는다. 사방으로 쭉쭉 뻗어나간다. 봄이 오기 전에 그려야 하는 겨울나무다. 봄이 오면 세상은 변한다. 위에서 자연을 훑어보면서 더 크게 확장시킨다. 더 큰 세상에 대한 갈망인가? 길도 여러 갈래고 나무도 수백 그루가 동시에 일렁인다. 일러스트 같으면서 사진과는 격이 다른 감정들이 동요한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림이다’라고 역설한다. 호크니의 작품에는 미묘한 감정들이 술렁대고 알 수 없는 허무가 흐른다. 함께 있으면서 따로이고, 같은 공간에서도 각자도생이다./화가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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