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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이석형의 '의원정심(醫員正心) 규제(規制)'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2월 20일 13시54분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진료 공백은 현실이 됐다. 수술 취소 등 피해 사례 접수도 잇따르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주요 100곳의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그젯밤 11시 기준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6,415명으로 확인됐다. 해당 병원 소속 전공의의 55%에 달하는 수준이다.

세조 시절에 보성현에 꽤 알려진 의사 장덕이 있었다. 빼어난 실력의 그는 인근 몇 십리 안에 의원이 없는 지리적 이점까지 활용해 돈을 긁어모았다. 그러나 인격수양이 덜 되었던 모양이다. 독점적 지위를 악용했다. 갈수록 갑이 됐다. 특진 명목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고, 일반으로 접수하면 건성으로 진료했다. 환자들은 착취임을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수려한 외모의 여인이 오면 작업도 걸었다. 그녀들의 심장을 뛰게 한 뒤 농락했다.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여성을 희롱한 그는 관리들에게 상납도 했다. 튼튼한 안전장치를 한 그는 비리혐의로 고발되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억울함을 관에 호소한 피해자들이 무고를 한 가해자로 몰리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장덕과 관에 대한 원성이 고조됐다.

1456년 전라감사로 간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이 강진 만덕사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이곳의 부처는 지극히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집안에 환자가 있는 사람들의 공양이 그치지 않았다. 환자 가족들은 절에 머무는 동안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대화를 했다. 그들은 이야기 중에 의원 장덕을 성토하곤 했다. 이석형은 사건 조사를 지시했다. 장덕의 죄상은 낱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석형은 그를 의법 처리했다. 서울로 올라온 이석형은 대사헌으로 재직하던 1461년, 조선판 히포크라테스 선언문인 '의원정심규제(醫員正心規制)'를 제정했다. '의원정심 규제'는 김수온의 시문집 '식우집(拭疣集)에 소개돼 있다. ‘하나. 의원은 의술의 갈고 닦음을 꾸준히 한다. 심사숙고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一 醫者 不殆硏究 深思熟考 勿爲失數之至)’ '의원정심 규제'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규정을 의자(醫者), 의원(醫員), 의술(醫術), 의도(醫道), 의학자(醫學者) 별로 항목을 구분하여 만든 것이다. 의술과 의도에 관한 표현도 의미심장하다.

정부는 비상진료대책을 가동한 상태다. 대형 병원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 수술 연기는 물론이고,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의사가 없다’는 병원 답변에 다른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이석형이 오늘에 살아있다면 지금의 진료 중단 사태를 보고 뭐라 할까. 이석형 공의 생가터에 훗날 의과대학과 병원이 세워져 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진료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기막힌 인연인가./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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