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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전북]지방소멸시대, ‘인구’가 아니라 ‘친구’를 만들자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1월 14일 12시26분

주요섭 연재순서

1. n개의 새만금 n개의 전라북도

2. 또 다른 전라북도는 어떻게 태동하는가?

3. 개벽적 지역주의: 그늘이 지역을 바꾼다

→4. 포스트성장시대의 인구·경제 패러다임

5. 전북이 ‘우주의 배꼽’이다

오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도의회가 인구 늘리기와 신성장동력 육성 등을 키워드로 관련 조례의 제정과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새전북신문, 2024/1/8). “특례권을 잘 활용해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지역발전도 견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 1호 조례는 '인구 늘리기’

이 기사에 따르면, 전북특별자치도의 1호 조례는 '인구 늘리기’가 될 수밖에 없다. 기사는 ‘인구 늘리기’ 정책을 강화할 조례안이 대거 준비되고 있다고 전한다. 예컨대 전북도의회 행정자치위는 가칭 ‘인구정책 조례안’과 ‘인구영향평가 도입 조례안’, 그리고 ‘아동친화도시 조성 조례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환경복지위는 출산을 장려하는 ‘난임 극복 조례안’을, 농산업경제위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워라밸 지원 조례안’ 등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최근 인구감소의 불가피성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인기 있는 유튜버인 최재천 교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출산율 회복과 관련해 명백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적은 숫자의 국민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에 대해 모색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진화적 관점’에서나 ‘생태적 관점’에서 ‘최악의’ 출생률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급격한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줄고, 입대자원이 줄고,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소비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인구감소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려을 것이다. 특히 심각한 인구유출로 ‘축소’에 ‘축소’를 거듭하는 전라북도의 입장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축소되는 세계

그러나 인구만이 아니다. 아예 ‘성장 패러다임의 종말’을 예고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연초 언론들은 세계경제가 “30년 만에 최악의 저성장 궤도 진입했다”는 세계은행의 발표를 일제히 보도했다. 성장율이 2.4%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한국경제가 장기간 1~2%대의 저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한다(한겨레신문, 2023/12/12). 심지어 일부 일본의 언론들은 한국경제가 정점에 이르렀고 이제 내리막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한국경제 피크론’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은 일본 등과 함께 이미 경제선진국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축소되는 세계』(사이)는 ‘특례권’을 통해 ‘특별한 성장’을 기대하는 전북특별자치도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주장을 제기한다. “인구든 경제든, 성장은 끝났다”는 것이다. ‘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축소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특히 한국과 일본은 ‘축소 국가의 선두’에 서 있다. 빠르게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은 ‘축소의 시대’를 다른 선진국보다 먼저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충격적인 것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국가가 추진하는 출산장려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출산장려책이 인구감소를 늦출 수는 있지만, 축소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포스트 성장시대의 경제와 ‘생명의 잉여가치’

요컨대, 세계는 포스트성장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근대 산업문명의 선진지였던 지구의 북반구는 축소시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설상가상으로 ‘성장시대의 종말’은 기후파국시대와 함께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20세기 이후 우리는 무한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성장 신화에 의문을 갖게 했다. (패권국가인 미국을 예외로 하면) 서유럽과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1-2%대의 저성장 혹은 제로성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실질소득과 구매력과 삶의 질은 가파르게 추락했다. 그리고,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끔찍한 수준까지 극단화되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2040년 이후에도 과거 50여 년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면 경제 규모는 2050년까지 현재의 15배 이상 팽창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조선일보, 2022/8/31). 지구생태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장 없는 번영』과 『포스트성장시대는 이렇게 온다』 등의 저서를 통해 포스트성장시대의 삶과 경제를 논의해온 영국의 생태경제학자 팀 잭슨(Tim Jackson)에 따르면, 이제 ‘가치 있는 일’에 대한 관념 자체가 바꿔야 한다.

캐나다의 정동이론가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는 ‘생명(life)’ 개념을 통해 ‘가치’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한다. 그는 ‘경제적 잉여가치’ 대신 ‘생명의 잉여가치’(surplus values of life)를 제안한다. 정동(情動)적 활력을 고려하는 이른바 ‘정동측정기(affect-o-meter)’를 통해 기존의 가치 개념을 재정의하려 한다. 화폐가치를 수요-공급의 가격이 아니라, 가격의 이면에 있는 ‘생명의 활력과 신명’의 힘을 중심으로 ‘재-가치화’하는 것이다.

생명경제의 재발명

그렇다면, 포스트성장시대에는 삶의 형식도 경제시스템도 다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산업구조와 경제시스템을 철폐하자는 것이 아니다. 철폐할 수도 없다. 새로운 경제적 변이(變異)를 알아차리고, 새로운 경제시스템에 주목하고, 나아가 다양한 경제형식들의 창안과 발명을 고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도 포스트 성장시대의 변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화폐와 금융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실험되고 실행되고 있는 지역화폐와 암호화폐에 대한 밀도있는 연구와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경제의 재발명이 요구된다. 전북특별자치도의 모토가 ‘글로벌 생명경제도시’인데, 이때의 생명경제는 글로벌 성장경제를 전제하고 있다. 새만금산업단지의 2차전지 관련 기업들도, 약 200만 평의 면적에 4만 명을 수용한다는 이른바 ‘스마트 수변도시’ 사업도 마찬가지다. 축소되는 세계와 포스트 성장의 관점에서는 ‘글로벌 생명경제 도시’라는 발상 자체가 매우 걱정스럽다.

생명경제의 재발명이 요구된다. 앞서 제안했듯이 ‘생명의 잉여가치’에 유의하는 생명경제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화폐가치, 경제가치로 환산되지 않은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전북사람들의 있게 한 ‘팔할의 바람’과 김제의 지평선과 갯벌과 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물산들, 맛과 멋, 그리고 미학과 영성이 그것들이다. 생기와 그리움, 마음의 풍요를 주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이를테면 ‘정동적 끌개(affective attractor)’이다. 우리에게 생기와 활력을 주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된다. 평온함을 주는 것, 깨달음을 주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생명가치의 관점에서 이를테면, 그것은 ‘탈상품화의 상품화’로 개념화될 수 있다.

‘인구’가 아니라 ‘친구’를 만들자

포스트성장시대의 삶과 사회와 세계를 받아들인다면, 이제 ‘인구’에 대한 입장과 정책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인구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미, 다양한 대안들이 나와 있다. 기존의 정주(定住) 인구 개념에 대해 교류인구, 체류인구, 생활인구, 관계인구 등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인구 개념들이 그것이다. 전라북도에도 이미 수많은 체류인구와 교류인구와 관계인구들이 존재하고 있다. 한 달 살기를 하는 귀촌청년들, 서울과 전북을 오가는 자유직업인들, 전북의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구매한다거나 종교 사회 문화적인 이유로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 년 전북에 살면서 일하고, 공부하는 이주노동자와 유학생이 그들이다.

그러나 포스트 성장시대,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포스트 휴먼시대에는 인구 개념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구생명공동체, (‘공동체’가 아닌) ‘공생체(共生體)’의 감각과 논리는 인구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대한 사유와 고려가 그것이다.

이를테면, ‘인구’가 아니라, ‘친구’가 절실한 시대이다. ‘인구가 아니라 친구를 만들자’ 라는 문구는 세계적인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포스트휴먼 사상가인 도나 해러웨이의 책 『트러블과 함께 하기』의 부제인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를 패러디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인구’가 아니라 ‘친구’다. 인간 친구(親舊)의 핵심은 ‘미운 정 고운 정’의 그 ‘정(情)’이다. 정동(情動)이론의 그 ‘정(情)’이다. 그러나, 여기서 ‘친구’란 사람만이 아니다. ‘정’은 인간 가족에게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반려동물은 ‘정’으로 연결된 가족이다. ‘정’은 생명과 생명, 생명과 비-생명 사이의 감응(感應)이다. 전북의 산과 바다와 들은 정으로 연결된 친구들이며, 감응하는 한 세계이다.

그리고 이제 경제성장 중심의 전북특별자치도와 다른, ‘생명의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나누며 ‘정’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전북이 탄생한다. 그것에 이름을 붙여 ‘생명평화특별자치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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