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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트로트 열풍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01월 14일 13시21분




트로트(Trot)라는 말은 서양의 춤곡인 폭스 트로트(fox trot)에서 왔다. 일제강점기에는‘유행가’등으로 불리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뽕짝’이라는 다소 비하적 명칭이 등장하여 꽤 오랫동안 공식적인 명칭으로 통용됐다.

트로트는 신민요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1960년대 이후 팝이나 포크 등이 강세를 보이면서 다소 쇠락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트로트라는 명칭이 가장 널리 쓰였다.

트로트는 대개 애절한 슬픔의 노래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행복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나그네의 고통 등을 내용으로 삼았다. 1932년 이애리수의「황성옛터」를 거쳐 1934년 고복수「타향살이」, 1935년 이난영「목포의 눈물」에 이르러 그 형태가 확고히 정착되었다.

당시 고복수, 이난영, 장세정, 남인수, 백년설 등이 인기를 모았다. 1940년대 초에는「나그네 설움」(1940)을 비롯한 장조 트로트가 새롭게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중요 작곡가는 전수린, 손목인, 박시춘, 이재호, 김해송 등을 꼽을 수 있다.

분단과 전쟁을 노래한「가거라 삼팔선」「단장의 미아리고개」「꿈에 본 내 고향」등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1964년 이미자의「동백아가씨」를 계기로 트로트의 인기는 부활하여 1970년대 초까지 다시 인기를 누린다.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호,「바다가 육지라면」의 조미미,「가슴 아프게」의 남진,「사랑은 눈물의 씨앗」의 나훈아,「물새 한 마리」의 하춘화 등이 유명했다. 1975년 포크와 록이 대마초 사건 등에 연루되어 급격히 위축된 후 1976년 조용필의「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필두로 다시 트로트가 부활한다.

최헌, 윤수일 등 록그룹 출신의 솔로 가수가 록 사운드와 트로트 선율을 결합한「앵두」,「사랑만은 않겠어요」 등의 노래로 새롭게 인기몰이를 하면서 트로트는 또 한 번의 변신에 성공한다. 요즘 어느 TV 프로그램 가운데‘미스터트롯’에 이어‘미스트롯2’가 대박 행진을 걷고 있다.

최고 시청률 27.9%를 기록하며 지상파와 종편 예능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 자리를 거머쥐고 있다. 그러나 인기가 있으면 논란도 따르는 법이다. 일각에서는‘참가자 내정설’을 제기하며 이른바‘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다. /정복규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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