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정치인, 경찰의 복장을 한 세 사람 앞을 걸어가던 여자,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들의 신발을 혀로 핥는다. 베네수엘라 출신 예술가 데보라 카스티요(Deborah Castillo)가 지난 17일 브라질 상파울루 거리에서 행한 퍼포먼스이다. 데보라의 행위는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의 시 ‘자유지역(Quartier Libre)’을 떠오르게 한다. <군모를 새장에 벗어 담고 / 새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 외출했더니 / 그래 이젠 경례도 안하긴가? 하고 / 지휘관이 물었다 / 아뇨 / 경례는 이제 안합니다 하고 / 새가 대답했다. / 아 그래요? / 미안합니다 경례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 하고 지휘관이 말했다. / 괜찮습니다 누구나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지요 하고 / 새가 말했다.>

지난 7일부터 대정전 사태까지 발생한 베네수엘라의 현재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총 25개 주 가운데 24개 주에서 정전이 발생해서 복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마라카이보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신생아 80여 명이 숨졌다. 막대한 석유자원과 수자원을 보유한 천혜의 땅인 베네수엘라의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는 정국의 혼란 속에 오랫동안 전력시스템을 방치 해왔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11일에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하기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는 지금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난까지 겹쳐져 있다.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등으로 탈출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베네수엘라 국민의 11%인 340만 명이 외국으로 떠난 상황이다. 정치와 경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좌파 포퓰리스트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실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전의 차베스 대통령이 하던 정책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권력 기반인 군부를 등에 업고 있는 형편이다. 데보라 카스티요의 예술 행위는 전적으로 베네수엘라 전체주의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녀가 퍼포먼스에서 입은 옷의 등에는 ‘FUCK AUTHORITY(망할 권한)’이라고 적혀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에서는 관중들의 환호에 집착하며 인기를 욕망하던 프록시모가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주인공 막시무스는 치열한 검투에서 승리해서 관중들의 함성을 이끌어낸 후, “이래도 만족 못 하겠나! 이래도!”라며 그들을 향해 절규한다. 수많은 이들의 환호성을 듣고 관중들을 사로잡으면서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 이것이 파울로 코엘로(Paulo Coelho)의 ‘11분’에 의하면, ‘소유하지 않으면서 소유하는 것’이다.

예술은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진리의 작품-안으로의 정립”이다. ‘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al?theia)는 ‘망각, 은폐’라는 의미의 ‘l?th?’에 ‘결여·부정·박탈’의 기능을 가진 접두사 ‘a’가 붙은 것으로, ‘탈-은폐성’을 말한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가 진리를 향해 나갈 수 있을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꿈꾼다.

/박정혜(심상시치료센터장, 전주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