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 빚는 사람, 안시성(50). 그는 오랜 세월 옹기와 함께 부대껴온 옹기장이다. 지난 세월이 아깝지 않다. 휴일 한낮, 그는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겼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달 항아리를 닮은 넉넉한 웃음이다. 투박한 그의 손은 신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옹기가 안씨의 손끝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옹기토를 주물러 커다란 물 항아리부터 밥그릇, 그리고 작은 찻잔까지 만들어 냈다. 수 만 가지 옹기가 그의 손을 거쳐 세상과 만났다. 안씨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53호 옹기장이다. 지난해 12월 옹기장이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30년여간 옹기를 빚은 보답이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가운데 옹기장은 그가 유일하다. 대학 도예과 재학 시절부터 맺은 옹기와 인연은 올해로 30여년 가깝다. 그동안 고비도 적지 않았지만 한 눈 팔지 않았다. 그리고 옹기장으로서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마에 불을 때고 옹기를 기다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안씨는 “마음에 드는 옹기가 나왔을 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김제시 부거리 작업장으로 안씨를 찾아갔다. 오월의 짱짱한 햇볕이 쏟아지는 날, 옹기를 주제로 나눈 그와의 대화를 기록한다.



- 작업장과 가마가 보물 같다.

“2008년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근대문화유산이다. 등록문화재 403호. 국내 가마터 가운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작업장은 106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내부는 물론 작업 방식, 작업 도구까지 100년 전 그대로다. 또 가마는 200년 이상 오랜 시간을 지녔다. 둘 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는 뛰어나다. 길이 10m를 넘는 가마는 한 번 불을 때면 나무 값만 400~500만원이 소요된다.”



- 김제 부거리에 옹기 마을이 들어선 배경이 궁금하다.

“구한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이 부거리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당시는 숲이 우거져 은신하기에 알맞았다고 한다. 또 옹기토가 풍부하다. 여기에 지금은 작은 천으로 전락했지만 당시에는 신평천을 통해 나룻배가 들고났다. 무거운 옹기를 수송하는데 나룻배를 이용한 것이다. 결국 천주교 신자들이 포교와 생계를 목적으로 옹기를 빚으면서 옹기마을이 형성됐다. 1992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런 가마가 5개나 됐다. 모두 사라지고 한 개만 남았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아쉽다.”



- 지난해 12월 전라북도 유일의 무형문화재 옹기장으로 지정 됐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영광이다. 어깨도 무겁다. 대학 때부터 옹기를 빚었으니 옹기와 인연은 30년을 헤아린다. 그동안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한다. 힘들고 돈도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옹기를 외면한다. 무형문화재 지정은 제자를 기르고 옹기에 대한 인식도 바꿔 보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으면 흙일은 어렵다. 다른 것들은 기교로 해결할 수 있지만 옹기는 기술만으로 안 된다. 힘도 있어야 한다. 사람 키 높이 물 항아리를 빚으려면 힘이 필요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제대로 된 제자를 기르고, 또 옹기장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놓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