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는 태평양전쟁 말기 청년들을 강제 징집해 인간 폭탄인 가미카제를 가고시마 치란에서 발진 시켰다. 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을 설치해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비행기 모양을 한 나무를 배경으로 한 치란특공평화회관 입구.
올해 초 가고시마(鹿兒島)현 ‘치란(知覽)특공평화회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소식을 접한 한국 언론은 발칵했다. 세계기록유산은 인류가 후손에게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다. 지금까지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은 300여건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치하에서 처참한 생활을 기록한 ‘안네 프랑크 일기’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기록물로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난중일기, 동의보감을 비롯해 5.18민주화운동과 새마을운동 기록물까지 11건이 지정됐다.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지는 해당 국가가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치란특공평화회관이 신청한 기록물이 무엇이길래 이웃 나라에서 발끈했을까. 해답은 ‘가미카제(神風)’다.
▲ 태평양전쟁 당시 출격했던 가미카제 동체
일본은 태평양전쟁 말기 패색이 짙어지자 엽기적인 군사작전을 고안했다. 인간 폭탄이다. 전투기나 잠수 어뢰에 사람이 탄 채 적함에 부딪쳐 공격하는 방식이다. ‘가미카제((神風)’와 하늘로 돌아간다는 ‘카이텐(回天)’이 그것이다. 둘 다 무참한 죽음을 미화한 것이다. 가미카제는 비행기, 카이텐은 잠수 어뢰를 이용한 공격이다. 폭탄을 탑재한 비행기를 탄 꽃같은 청년들은 그대로 적함에 내리꽂는다. 구명장치는 없다. 오로지 ‘돌격 앞으로’와 죽음만 있을 뿐이다. 가미카제 탑승원은 ‘제로센(零戰)’으로 불린 단발 엔진 전투기에 250㎏의 폭탄을 적재하고 출격한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 어뢰’로 불리는 카이텐 역시 1,550㎏의 탄두를 싣고 적함에 충돌한다.
▲ 특공대원 가운데 조선인 출신 11명의 명복을 비는 비석
가미카제 특공대는 처음에는 미군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위세는 시들해졌다. 명중률이 생각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1944년 8월 21일 첫 출격 이후 패전 때까지 총 3,300기가 출격했다. 명중률은 11.6%에 그쳤다. 카이텐은 훨씬 더 명중률이 떨어졌다. 미군 유조선 한 척을 침몰시킨 게 전부다. 치란평화특공회관은 가미카제가 출격했던 기지에 세운 기념관이다. 비행장과 특공대원들이 생활했던 막사가 여기에 있었다. 일제는 1944년 이곳에 일본 육군 최대 가미카제 특공기지를 설치했다. 20살 전후의 젊은이들을 침략 전쟁의 불쏘시개로 동원할 목적에서다.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조작된 애국심을 강요 받았다. 겉으로는 지원병이지만 실상은 강제 징용이다.
▲ 특공대원의 결의에 찬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을 일본 어린이가 올려보고 있다.
청년들은 출격을 앞두고 생명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초시계 바늘만 돌아간다. 이제 한 달 남은 내 생애에서 자신을 찾아내려고 하는 나의 몸부림.” 당시 24살 특공대원의 일기다. 또 다른 청년은 “한 번도 효도를 못했지만 내일 일본을 위해 죽습니다”라며 부친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김준섭 국방대학 교수는 일본 유학시절 가미카제 생존자의 TV증언을 회고했다. “‘그 생존자는 출격 당일 자신의 비행기가 활주로 맨 끝에 있어 기뻤고, 가능한 천천히 활주로를 걸어가며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뺨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을 느꼈다’고 했다.” 비행기까지 걸어가는 몇 분 동안 어떻게든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발버둥친 것이다. 결국 치란평화특공회관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기록한 장소다.
그런데 자신들의 잘못을 참회하는 대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나섰으니 이웃 나라들이 경악한 것이다. 당시 시모이데 간페이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내년 종전 70년을 맞아 특공대원들의 메시지를 널리 알려 전쟁의 비참함과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며 “편지와 일기 333점을 등재 신청한다”고 했다. 젊은이들을 강제로 동원해 사지로 내몬 것을 반성하는 대신 어줍잖은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특공대원들이 쓴 일기나 편지는 강요와 협박에 의했다. 특공대원 출신 신타 마사미치는 “개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본심을 토로하는 것은 금기였다”고 말했다. 치란으로 운전대를 돌린 것은 특공평화회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가고시마에서 치란을 가려면 남쪽으로 40여㎞를 더 내려가야 한다.
전주~군산에 불과하지만 편도 1차로 산길을 달려야 하는 까닭에 1시간 30여분이 걸렸다. 평화특공회관은 분위기가 묘했다. 기념관과 특공대원의 영령을 위로하는 절과 신사가 있다. 또 주변은 수많은 이들이 심은 기념수와 기념비로 빼곡해 스산한 느낌을 준다. 안내인은 “매년 수많은 일본인들이 찾는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방문 당일에도 일본인 고교생 단체 관람객과 마주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것에 감동을 받는 눈치다. 한쪽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학생도 있다. 기념관을 보고도 비분강개하지 않는다면 일본인이 아닐 것이다. 군국주의 국가에 대한 반성을 가르치는 대신 감성적인 부분만 자극한 결과다. 수년 전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치에 의해 수많은 선조들이 가스실에서 숨진 그곳은 이스라엘 청년들에겐 필수 견학 코스다. 수용소 문을 나선 유대인 청년들은 다윗 깃발을 앞세운 채 통성 기도를 올렸다. 선조가 당한 참혹한 모습을 보고난 뒤 비분강개한 것이다. 문제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을 보면 사랑 대신 증오를 배운 셈이다. 치란 평화특공회관 역시 자신들의 잘못을 참회하는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마땅한 데 거꾸로 증오를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외눈박이 교육의 결과는 또 다른 비극을 부른다. 오늘날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판치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곳을 관람한 일본 청년들 가운데 과연 몇이나 전쟁의 비극을 실감하고,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지 의문이다. 거꾸로 증오의 화살을 이웃나라에 되돌리지 않을지 걱정이다. 내부에는 가미카제에 동원됐던 부서진 비행기 동체를 비롯해 편지, 일기장 등 유물이 있다. 비장한 분위기 속에 한국인으로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했다. 기념관에는 당시 청년들의 사진도 있다. 한결같이 밝게 웃는 모습이다. 스무살 안밖의 청년들이 과연 죽음을 앞두고 그렇게 천연스럽게 웃었을지 의문이다. 조작 혐의가 짙다. 기념관 옆에는 당시 군인 막사가 있다. 내무반 침상에서 그들은 출격을 앞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부모와 형제를 떠올렸을 것이다. 치란 기지에서 출격해 숨진 특공대원은 모두 1,036명이다.
이들 가운데 조선인 대원은 11명이다. 기념관 입구 후미진 구석에 조선반도 출신 특공대원을 기린 기념비가 있다. 비문에는 ‘아리랑 노랫 소리를 먼 조국에 남겨놓고 간 11명. 조선반도 출신 특공대원 11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비석을 세운다’고 써 있다. 일본인 2명이 10여년 전에 세웠다고 한다. 그들은 일본인일까 한국인일까 생각하니 복잡하다.
수많은 비석 가운데 고이즈미 전 총리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눈에 뜨인다. 극우 정치인 고이즈미는 힘들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방위청 장관을 지낸 부친의 고향이 가고시마이기도 하지만 특공대원들의 죽음을 보면서 정치적 결의를 다진 셈이다. 고이즈미에서 시작된 일본 극우 정치인의 뿌리는 아베 총리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왜 위안부 실체를 부인하고, 고노 담화를 재고해야 한다며 요란을 떠는지 치란 특공평화기념관을 보면 안다. 평화는 없고 특공만 남은 치란을 떠나면서 성숙한 국민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