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하구에 위치해 있는 군산의 최남단 오봉포구. 배가 정박했던 낡은 선창 주변엔 새만금 물막이 공사의 영향 탓인지 바닷물이 들어온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주변의 갯벌조차 모습을 감춘 지 오래고 적색을 띤 칠면초만이 무성해 있었다.


◇오봉마을의 유래

회현면 월연리 오봉마을은 옛 옥구 8경의 하나인 오봉망해(五峯望海)로 알려져 있다. 오봉산을 자라모양이라 하여 자라(鰲)자에 산(山)자를 썼는데 그 뒤 봉오리가 다섯개라고 해 오봉(五峯)이라 쓰게 됐다고 한다. 오봉망해란 오봉산에 올라서서 서쪽 바다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절경이 아름다워 선인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이 오봉산에는 옛날 작은 절이 있었는데 만경강 건너 망해사를 지을 때 스님이 시주하러 왔으나 가난한 절인지라 줄 것이 없어 새끼 한 발을 주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망해사를 다 지을 때까지 쓰고 나면 한발씩 남았는데, 다 짓고 나니 사라졌다고 한다.

이 지역은 만경강 강변으로 수년전만 해도 어패류가 많이 나고 새우알로 담은 하란 젖갈은 진귀해 나라님께 진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섯 봉우리 오봉산

군산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작은 산인 오봉산은 예전엔 다섯 봉우리가 각기 어우러져 제법 규모가 있는 산세가 아름다운 산이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지도에 의하면 이 오봉산에는 강임사라는 절이 있어 현재 만경강 건너편에 남아있는 김제의 망해사와 마주 보고 있었다. 더욱이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만경강 하구의 전경이 아름다워 조선시대엔 옥구팔경의 한 곳인 오봉망해로 알려져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방문처였다.

하지만 간척사업의 일환으로 1938년 오봉의 농장주였던 일본인 행천이 회현면 월연리에서 옥구군 수산리에서 이르는 강가에 오봉산을 깎아 제방을 쌓음으로써 오봉산은 육지의 끝으로 네 봉우리가 잘린 채 현재는 만경강을 굽어보는 등대처럼 남아 있다.

◇문 닫은 오봉포구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인해 이제는 속살을 훤히 드러낸 오봉포구. 꼴뚜기와 망둥어가 뛰어놀던 오봉포구의 갯벌엔 이제는 말라버린 강물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물새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창의 배 닻줄을 걸어 놓았던 구조물들은 갯바람에 퇴색할 대로 퇴색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흉물스런 모습을 띄고 있었다.

오봉포구는 조선시대 옥구현 장면에 속하는 곳으로 만경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어선3척 어망(魚網) 3통을 가지고 봄철에 칠산바다에서 주로 조기어업에 종사했다.

이 지역에서 했다는 어망 3통은 찌기망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찌기는 오봉의 특산물인 하란새우를 잡는 어전으로, 통상적으로 찌기 30통을 한 등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이 마을에는 어선이 없이 오직 약간의 농사와 맨손어업으로 생활했는데 맨손어업의 주된 방법이 어전이었다.

이 마을에서 했던 어전은 크게 3가지로 나눠지는데 찌기, 어망, 개막이가 그것이다. 이들 3가지 어전은 일년 동안 월별로 돌아가며 순서에 따라 이용했는데 찌기는 2~3월까지 하란새우를 잡았다.

또 새우잡이가 끝나면 4~7월까지는 어망을 설치해 게·부서·준치 등을 잡았고, 어망이 끝나면 9~11월까지는 개막이로 흰 새우와 고누리라는 젓거리 잡어를 잡아 한해 어로작업을 마감했다. 이렇게 마지막 개막이를 마감하면 다시 일회용 어구인 찌기통을 만들기 시작해 다시 순환작업을 하는 형태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행해졌다는 찌기는 1960년경 중단됐는데 오봉마을 특산품으로 임금님 진상품이었다는 하란젓의 생산도구로서 제작됐기에 그 역사가 깊음을 알 수 있다.

오봉포구는 오봉마을에서 대야면 신촌까지 이어져 100여척의 어선이 어업활동을 한 곳으로, 이때만 해도 60가구 250여명이 살았다. 이곳 주민들은 소형 안강망으로 꽃게와 대하, 숭어 등을 많이 잡았는데, 소득이 많은 주민의 경우에는 농사 만여평을 짓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수입이 컸다. 당시에 농사 만여평을 짓는다는 것은 네명의 자녀를 대학까지 보낼 수 있어서, 어업활동으로 많은 소득을 올렸음을 가히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새만금 물막이 공사로 어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던 선착장도 뼈대만 남긴 채 옛 영화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돼 버렸으며, 어업활동이 주된 소득이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 이제는 50여가구 130여명 정도만이 살고 있다.

◇애환서린 주민들의 삶

오봉마을 골목을 지나가며 마을을 들여다보았다. 신축한 듯한 몇 채의 양옥은 철대문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대문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서로가 믿음을 가지고 가족처럼 지낼 수 있기에 그들에겐 경계구역 설정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인정이 메말라 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상실해 가는 요즘 현실을 고려하면, 오봉마을 주민들은 욕심 없는 순박한 마음들을 소유하고 있기에 대문이 굳이 필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봉포구가 사라지자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났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만이 고향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일부 주민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숭어를 잡아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현재는 이마저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렸다. 현재 마을주민 일부 어르신들은 오봉포구 주변 청소를 하면서 용돈정도 벌고 있지만,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어려운 상태다.

/군산=글·사진 김기현 기자 sisando@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