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방조제가 건설되면서 포구가 사라지고 있다. 대략 13개 가량 크고 작은 포구가 조만간 사라질 운명을 앞두고 있다. 아직은 내측에서 기신기신 조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방조제 내측 물빼기가 완료되면 배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배가 없는 포구는 포구가 아니다. 불임의 땅은 존재가치를 상실하듯, 배와 고기가 없는 바다는 더이상 바다가 아니다. 고깃배를 품지 못하고, 그래서 어부들이 떠나는 포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새만금방조제 건설로 인해 사라지는 포구를 찾아 그들의 애환을 기록한다. <편집자 주>

농부에게 땅이 논과 밭이라면, 어부에게는 바다가 그렇다. 어부는 평생 바다를 삶터로 삼고 그곳에서 희노애락을 흘려 보냈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삶을 마감하는 그들에게 바다는 신성하다. 그곳에 포구가 있다. 포구는 어민들의 삶터다. 때론 목숨을 걸고 맞섰기에 고통스럽지만, 그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꾸렸기에 외면할 수 없는 운명이다. 포구는 흥청거릴 때 포구답다. 만선의 고깃배가 고동을 울리고, 그 위로 갈매기가 유영할 때 포구의 흥청거림은 빛난다. 흥청거림을 잃어버린 포구는 을씨년스럽다.

군산시 옥구읍 선연리 하제포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군산대학에서 서쪽으로 10여㎞를 가면 하제라는 정겨운 이름의 포구가 있다. 노랑조개, 생합, 배꼽, 피조개 주산지다. 방조제를 막기까지 바다는 황금어장이었다. 남정네들은 배를 타고 나가 앞바다에서 돈 되는 패류를 건져 올렸다. 하루 작업으로도 배 안 가득히 노랑조개며, 피조개, 생합, 배꼽을 채웠다. 물이 빠지면 아낙네들 차례다. 끝없이 펼쳐진 동네앞 갯벌에 나가 맨손으로 조개를 잡았다. 그 돈으로 집을 샀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고, 결혼을 시켰다.

하제포구의 특산물인 노랑조개는 짬뽕 국물 맛을 내는 으뜸 재료다.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어민 김평운씨(49)는 “대한민국 중국집 짬뽕에 하제에서 난 노랑조개가 안 들어간 게 없다”는 말로 하제 앞바다에서 난 노랑조개를 말했다. 노랑조개는 포구 앞 조개공장에서 가공됐다. 커다란 솥 삶아 깐 뒤, 가공용으로 수출하거나 건조시킨 뒤 음식재료로 팔려나갔다. 포구는 뱃고동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 그리고 노랑조개를 가져가기 위해 뭍에서 온 화물트럭들로 분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적막하다.

하제포구의 흥청거림은 2004년 4호 방조제를 막으면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방조제 전체 구간에 대한 물막이공사가 완료되면서 더이상 하제 앞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바닷물을 가둔 거대한 호수에 불과하다. 그 많던 폐류도 간데없이 사라졌다. 내수면에서 겨우 고기잡이를 하는 정도다. 김평운씨는 “어지간한 마을 하나정도에 불과한 하제포구에 한때는 1,000여 가구 4,000~5000여명이 몰려 살만큼 흥청거렸다. 지금은 바다도 죽고, 포구도, 마을도 죽었다”며 깊은 한 숨을 토한다.

하제포구에 들어서면 적막하다 못해 쓸쓸하다. 죽어가는 포구를 바라보는 것은 애잔하다. 그런 하제포구를 대낮에 대하기란 서로가 민망한 노릇이다. 4,000~5,000여명이 북적였다는 말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듬성듬성 방치된 폐가가 눈에 뜨이고, 풀기잃은 개들만 어슬렁대는 한낮의 하제포구는 생기를 잃었다. 한때는 혈기 왕성한 어부들로 북적였을 사랑방도 할 일 잃은 남정네들만 둘러앉아 내기 화투를 치고 있다. 인접한 미공군 비행장에서 고막을 찢는 전투기들의 굉음만 요란하다.

두 시간 가까이 마을 돌았지만 주민들을 만나기 어렵다. 갯벌에서 만난 정성순씨(76)만 모랫바람을 맞으며 그나마 몇 안되는 조개를 캐고 있다. “아주 못쓰게 되부렀어. 이 바다에서 4남매를 키웠는데 이제는 모두들 뭍으로 떠났고, 마을 인심도 말도 못하게 됐다”고 말하는 정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회한이 스쳐간다. 포구는 버려진 폐선들로 쓸쓸하다. 언제부터 조업을 포기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배 안의 버려진 어구들은 녹슬고 만지면 부서질 것 같다. 바닥은 들뜨고, 조개 무덤에선 악취가 진동한다.

그래도 어민들에게 바다는 버릴 수 없는 터전이다. 지난해 선주당 150~200만원씩 갹출해 1억4,000여만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수위를 낮추는 바람에 저만치 물러난 바다에 잇대 임시 선착장을 만들었다. 그래서 선착장까지 가려면 포구에서 한참을 걸어나가야 한다. 어민들이 걷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갯벌은 다름아닌 수천, 수만년동안 바다물에 잠여있던 곳이다. 그 갯벌이 맨살로 드러나 사막처럼 먼지를 풀풀 날리고 있으니 믿기지 않는 현실에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100여척의 배들은 얼마후면 사라질 바다에서 마지막 조업을 하고 있다.

돈 벌이는 안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새만금방조제가 있는 야미도, 비안도 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는다. 방조제를 바라보면 사라진 바다와 포구가 그립고, 자신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갯벌이 사막으로 변한 게 속상해서다. 하제포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난 고은 시인은 이 바다를 배경으로 ‘세노야’라는 시를 지었다.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라는 그 아름다운 절창은 이제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하제포구를 떠나올 때, 바다가 아닌 사막위로 떨어지는 노을을 뒤로한 채 세노야의 애잔한 노랫가락만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임병식 기자 montlin@sjbnews.com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4살 때 하제로 이사온 김평운씨(49)는 평생을 하제포구에서 뒹굴었다. 17살 때부터 배를 타기 시작해 30여년을 바다에서 놀았다. 한때 하제 앞바다는 황금바다였다. 당시 하루 작업으로 100만원을 손에 쥐었다. 적지 않은 돈이다. 김씨는 “억척소리 듣는 사람은 연간 140~150일, 부지런하다는 사람은 130일, 게으른 사람은 100일을 바다에서 움직였다. 그 돈으로 남부럽지는 않지만 아이들 교육시키고 생활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는 바다도 죽고 이전만 못하다”며 새만금방조제 완공 이후 변화된 삶을 설명했다.

“방조제 완공 이후 안통(안 바다)은 못쓰게 됐다. 폐류가 사라지는 바람에 고기로 돌렸는데 서툴고 낯설어 근근히 먹고 사는 정도다”는 김씨는 “오늘도 조업을 했지만 수확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허탈해 했다. 방조제 물막이 이후 폐류의 99%가 사라졌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하제포구의 자랑이었던 노랑조개, 피조개, 생합, 배꼽은 6월 초순부터 7월 중순이면 성수기였다. 해수욕장 개장 이전에 건져올린 싱싱한 패류는 없어서 못팔정도였다. 그런 바다가 먼지만 폴폴 날리는 사막으로 변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바다를 막기 전 김씨는 하루 6~7시간이면 배를 가득 채우고, 하루 10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지금은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15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도 그 돈을 만지지 못한다. 면세유 값이 오른데다 어패류가 바닥 났기 때문이다. “기름값 오르고 세월 지났는데 지금도 100만원을 손에 쥔다. 그러나 이 마저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지 암담하다”는 김씨는 새만금방조제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어도 술집과 다방조차 없을만큼 인심 좋았던 마을이 망가진 게 모두 새만금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김씨는 “새만금방조제 완공, 비행기 소음 보상, 미공군 비행장 폭발 위험 지대 등을 이유로 조만간 하제 마을 자체가 사라진다”며 한때는 해산물로는 짱짱했던 하제포구의 스러져 가는 운명을 안타까워 했다.

'하제'는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

하제의 우리 말 뜻은 내일을 의미한다. 그끄제, 그제, 어제, 오늘을 거쳐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오로지 내일(來日)만 한자어 말이다. 이를 두고 일본식민지 시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의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거세할 목적에서 내일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인 하제를 없앴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무엇이든 좋지 않은 것은 일본인 탓으로 돌리는 반일감정에서 비롯된 말일 뿐이다. 내일을 의미하는 우리말 고유어는 원래 있었지만 중간에 소실됐다는 게 맞다.

명지대 진태하 교수는 ‘계림유사’를 근거로 이를 밝히고 있다. 계림유사에는 그제(前日)를 기재(記載), 어제(作日)는 흘재(訖載), 오늘(今日)은 오재(烏載), 내일(明日)은 할재(轄載)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할재는 세월이 지나면서 하제로 변화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제란 말은 사라지고 대신 내일이 쓰였다는 것이다. 또 ‘참 새로운 한글’이란 책에도 내일을 대신할 수 있는 우리말로 ‘올제’와 ‘하제’를 꼽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올제도 하제도 없어졌다. 어쨌든 고은 시인이 짓고 양희은이 부른 ‘세노야’의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의 흔적을 간직한 하제포구는 정겹고 귀하지 않을 수 없다.

/임병식 기자 montlin@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