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풍차의 나라’ 네델란드는 말랑말랑한 나라가 아니다. 북해를 따라 세계 최장의 방조제(32.5㎞)를 쌓고, 22만,5000ha에 달하는 방대한 땅을 개척한 나라다. 또 남한 면적의 절반, 인구 1,600만명에 불과한 태생적 한계를 넘어 유럽 최대의 물류 허브로써 입지를 굳힌 지 오래다. 네델란드 저력은 로테르담 항과 스키폴공항을 중심으로 한 물류산업에 있다. 급증하는 대 중국 교역에 대비해 새만금지역에 국제 규모의 항과 공항을 조성하자는 여론이 비등하다. 네델란드 물류산업의 중추인 로테르담 항과 스키폴공항을 통해 물류산업의 중요성을 살펴 본다. /편집자 주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1시간을 날면 네델란드 스키폴공항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다시 승용차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여를 달리면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에 들어선다. 스키폴공항에서 로테르담까지는 70㎞. 빨랫줄처럼 곧게 뻗은 고속도로에는 대형 콘테이너 운송트럭들이 쉴새 없이 꼬리를 문다. 라인강 하구에 위치한 로테르담은 네델란드를 손꼽히는 선진국으로 견인한 물류산업의 중심지이다.

항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라인강 하구에서 북해까지 50㎞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항구임에도 5만톤급 이상 대형 선박이 빼곡하다. 항구는 컨테이너 화물을 선적하는 골리앗 크레인이 쉼 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크레인을 조작하는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 작업이 무인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비용은 줄이고, 효율은 극대화하는데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항만 주변에는 한진해운과 한국타이어, 삼성그룹, LG그룹 등 550여개 전 세계 주요 선사 및 물류·유통·제조업체의 물류배송센터가 즐비하다.

지난해 로테르담 항에서 처리한 화물은 3억 7,023만 톤으로 중국 상하이,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부산의 두 배를 넘는다. 유럽 수입물량의 60%, 수출물량의 30%가 로테르담 항을 통해 처리됐다. 전체 유럽 화물 물동량의 40% 이상을 점유한 로테르담 항은 유럽 제1의 중심 항만이다. 지난해 컨테이너화물 처리실적은 930만TEU로 유럽 최대이다. 또 부가가치액은 250억 달러로 네델란드 GDP의 16%를 차지하며, 부산항의 17억 달러에 비해 15배 이상 높다.

로테르담 항의 강점은 배후 수송체계의 연계가 원활하다는 점이다. 항은 고속도로와 철로, 운하를 통해 반경 500㎞ 이내 유럽 전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한다. 항에서 유럽 각지로 48시간 내에 도착 가능한 5개의 고속도로망, 4개의 철도노선, 동유럽까지 실핏줄처럼 펼쳐진 내륙운하를 통해 밤낮 없이 화물이 이동한다. 5,200㎞의 내륙운하(운송비율 35%)에는 30개 노선의 내륙 컨테이너이 운항한다. 철도는(16%) 유럽 철도망과 연계돼 주 200회 정시 셔틀 서비스를 이용해 유럽 전역으로 연결하며, 도로수송(49%)은 서유럽 대부분 지역까지 24시간 이내 운송이 가능하다. 매일 1만 2,500대의 트럭이 유럽 전역을 누빈다. 또 피더수송은 유럽 지역 내 200개 항구를 연결하는 등 배후수송체계는 완벽에 가깝다. 이곳을 거쳐야만 가장 쉽고, 편리하며,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외국 제조기업들이 유럽 진출의 전진 기지로 로테르담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테르담 항은 유럽 최대의 환적 항이기도 하다. 물동량의 70%가 인근 국가의 환적물량으로 500척 이상 정기화물선이 로테르담 항에 기항하고 있다. 이들 선박은 전 세계 500개 항구를 오가며 연간 3만회 이상을 운항한다. 로테르담 항은 환적물량이 갈수록 급증함에 따라 ‘메가허브센터 계획’을 수립, 총 23억 달러를 투입해 초현대식 컨테이너화물과 대규모 유통단지를 건설 중이다. 사업이 완료되는 2010년이면 취급 물동량은 360만TEU로 확충돼 총 컨테이너 취급물량은 1,000만TEU로 늘어난다. 로테르담 항 ECT터미널의 에릭 나이하우스 매니저는 “갈수록 컨테이너 환적 화물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전체 화물처리량 가운데 환적물량이 40%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원활한 환적처리를 위해 컨테이너화물단지를 추가 조성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테르담 항이 유럽의 물류 중심으로 입지를 굳힌 데는 지리점 이점뿐만 아니다. 대규모 배후물류단지 확보와 물류를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정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네델란드 정부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이 됐다. 통관 절차가 간편하고, 물류투자에 대한 규제가 없는 데다 항만물류 무인자동화시스템(INTIS)은 신속한 정보 및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 매년 전 세계 1,000여개 항구에서 온 선박 14만여척이 체선·체화 없이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기업 물류센터의 57%, 아시아기업 물류센터의 56%가 로테르담 항에 입주했다.

환적화물은 보틀렉, 엠하벤, 마스플락트 등 3개 물류단지(122만평)를 통해 처리된다. 이들 물류단지는 화물터미널 등 복합운송시설 가까이에 위치함으로써 신속한 화물 처리를 도모하고 있다. 물류유통단지에서는 화물 분류, 재포장, 조립, 가공, 라벨링, 서류작업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적화물보다 경제가치가 12배 이상 높은 고부가가치 화물을 생산하는 물류유통단지의 힘이 네델란드를 물류강국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로테르담 항은 1996년까지 1단계 38만㎡의 유통단지를 조성한데 이어 지난해까지 2단계 45만㎡를 추가 조성했다. 또 철도수송 비중을 높이기 위해 2008년 완공을 목표로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연결되는 컨테이너·화물 전용 고속도로(VTW)를 공사 중에 있다. 도로를 이용한 부산항의 내륙운송 비중이 87.7%에 달해 화물연대 파업 때마다 물류 운송이 마비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새만금지역을 중국을 포함한 환태평양 물류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새만금 주변에 대규모 배후물류단지 조성과 함께 입체적 운송시스템 구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체선·체화가 심각하고, 내륙운송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부산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새만금의 입지적 여건을 활용해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육성하려는 정책 결정이 시급하다.

△네델란드 스키폴 공항

스키폴공항은 로테르담 항과 함께 네델란드를 물류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암스텔담 서남쪽 20㎞에 위치한 공항은 97개국, 250개 도시를 연결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허브 공항이다. 3분마다 한 대씩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스키폴공항을 찾는 여객과 화물의 60% 이상이 다른 나라로 연결돼, 스키폴공항이 환승 공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승객들은 공항 내 고속도로와 철도를 이용해 유럽 곳곳으로 편리하게 이동한다. 최단 시간 내 환승이 가능하며, 기다리는 동안 식사와 비즈니스 상담, 쇼핑, 휴식 등 다양한 부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키폴공항은 유럽 유통거점 및 비즈니스센터로 꾸준히 성장하면서 공항 주변 입주 업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유럽 각 지역으로 철도와 도로가 원활히 연결돼, 항공화물의 60%를 도로를 통해 운송한다. 2005년 기준 연간 4,400만명의 승객(유럽 4위)과 145만톤의 물동량(유럽 3위)을 처리했다. 전년 대비 매출(9억 4,800만 달러) 8.1%, 순이익(3억 1,100만 달러) 17.4%가 증가했다. 또 수화물 7,000만개를 처리한다는 중장기 전략에 따라 2012년까지 5억 유로(6,000억원)를 투자해 물류단지를 확충 중에 있다.

스키폴공항의 경쟁력은 주변 지역에 개발된 산업·물류단지에 있다. ‘AAA(Amsterdam Airport Area)’로 불리는 이 단지에는 IBM, 캐논, 미쯔비시, 마이크로소프트, 후렛팩커드 등 다국적 기업의 유럽본부나 물류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스키폴 지역개발공사가 600ha(200만평)에 달하는 광대한 부지를 비즈니스 파크로 개발해 글로벌 기업을 유치한 것이다. 입주기업에 대해 행정업무 대행은 물론 직원 채용, 주택알선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3년까지 1단계 45만 4,000평에 이어, 2015년까지 2단계 45만 4,000평을 개발할 예정이다. 현재 공사 중인 스키폴공항~로테르담 항까지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도로 주변을 대단위 산업 및 물류벨트를 구축함으로써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로테르담(네델란드) /글=임병식기자 montlim@sjbnews.com 사진=조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