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11시간을 비행한 끝에 유럽의 허브 공항인 네델란드 스키폴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청사를 나와 다시 북동쪽으로 35㎞를 달려 도착한 곳은 네델란드 간척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플레볼란트(Flevoland)’. 이곳은 간척을 통해 조성된 땅으로 1986년 1월1일 네델란드의 12번째 주(洲)로 지정됐다. 우리에게는 쥬다찌, 네델란드 발음으로는 자위더제이(Zuyder-zee) 간척사업으로 알려진 곳이다.

최첨단 매립공법으로 완공된 방조제 입구에서 바라보면 오른쪽 간척지(육지)가 왼쪽 해수면(북해)보다 약 5m가량 낮다는 사실이 육안으로 확인된다. 네델란드 국토의 27%가 바다보다 낮다는 평소의 상식을 재확인하는 셈이다. 플레볼란트는 육지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토개발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자위더제이 간척사업은 32.5㎞에 이르는 방조제를 쌓아(1932년 완공) 무려 22만 5,000ha(6억평)에 달하는 간척지 5곳을 조성했다. 3개 담수호 12만 5,000ha는 별도다. 새만금과 비교하면 방조제(33㎞) 길이는 다소 짧지만 면적(4만 1,000ha)은 4배 이상 넓다.

너비 90m(왕복 4차로)의 방조제는 북해를 향해 빨랫줄처럼 곧게 나있다. 해수면보다 8m가량 높아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망망대해가 끝없이 펼쳐진다. 광활한 매립지역을 보기 위해 매년 5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고 연간 10억 달러(1조원)의 관광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방조제는 암스텔담항에서 발생한 선적 및 하역 화물을 실어나는 물류 도로 역할을 한다. 또 네델란드 해안선 300㎞를 단축, 서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고속화 도로로 활용되고 있다.

이 사업은 1920년 첫 삽을 뜬 뒤, 지금까지 4개 지구는 완료됐다. △1지구 위링거미어(2만ha) △2지구 노르두스트(4만 8,000ha) △3지구 외스텔릭(5만 4,000ha) △4지구 자위델릭(4만 3,000ha) 등이다. 5지구 마커와드(6만ha)는 후대를 위해 개발을 유보하고 자연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상태다. 안내를 맡은 피터 올브랜씨는 “ 5지구는 애초 산업용지로 지정됐으나 내부 개발 시점(1980년대)에서 산업단지 수요가 감소하고 환경에 대한 욕구 증가함에 따라 토지이용계획을 바꿔 지금은 습지이동성 물새 보호를 위한 자연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담수호는 관광자원은 물론 농업용수, 주변 1,200만명의 식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플레볼란트 주(洲) 네 곳에 거주하는 인구는 현재 37만여명에 달한다. 바다를 메워 만든 도시라서 고풍스럽기보다는 신도시 인상이 훨씬 강하다. 담수호를 이용한 수상레포츠 등 관광레저산업이 주력인 것은 이 때문이다. 연간 레저관광산업 매출은 3억 3,000유로로써 4,10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입장료 수입만도 연간 5,500만 유로를 웃돈다. 테마파크 ‘식스 플래그’는 연간 입장객만 60여만명에 달하며 플레볼란트에서 가장 크다. 이밖에 골프장 5곳, 110개의 명품과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선 명품 아울렛 쇼핑몰도 관광객을 끊임없이 불러들인다. 호텔 11개(1,020실), 팬션 5개(58실), 저가 숙박시설 B&B 40개(179실) 등 관광산업기반이 풍부하다.

자위더제이 간척사업은 1927년 식량안보와 국토확장 목적이 맞물려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농산물이 품귀현상을 빚자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과 부족한 땅을 늘릴 수 있는 방안으로 간척사업이 대두됐다. 네델란드 면적은 남한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1,600만명이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자위더제이와 함께 남서부 질란트 델타지역(6,700ha)을 중심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이 추진됐다.

주목할 점은 플레볼란트 지역의 토지이용계획이 탄력적으로 수정된 것이다. 간척사업의 애초 목적이 먹거리를 충당할 농토 확보가 목적이었던 만큼 초기 개발한 1·2지구는 농지 비중이 87%로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3지구는 농지 비중이 75%로 낮아진데 이어 4지구는 50%로 크게 줄었다. 1970년대 들어 도시, 관광 및 위락, 자연보전적 토지이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토지이용 방향이 수정됐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4지구는 △농경지 50% △주거지 25% △녹지 18% △수로 및 제방 7% 등이다. 이곳 주민 반 비예크씨는 “간척지는 정부 소유로써 임대를 통해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간척사업은 인구분산 효과와 함께 북동부 지역경제에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실제로 간척지 매립 초기 4만 5,000명에 불과했던 주민은 지난해 말 현재 18만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또 통행량이 급증하는 바람에 프리슬란트(Friesland) 지역을 잇는 자동차 전용 고속국도 A7이 개설돼 일일 평균 1만5,000여대의 차량이 통행하고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이 농업용으로 시작됐지만 네델란드 자위더제이 간척사업에서 확인됐듯 내부 이용계획을 농지로 국한하지 말고 산업구조 변화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음은 시사적이다. 농업용지, 산업용지, 관광 및 위락용지, 경관농업용지 등으로 활용방안을 고려하되, 실질적인 개발 시점에서 주변 흐름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새만금간척사업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는 게 네델란드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한편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역간척과 관련 전북도 관계자는 “농산물 과잉생산으로 인한 감산정책과 국민들의 환경인식 변화 때문에 하천변의 생산성이 낮은 농지나 기계배수 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되는 저지대 땅을 담수호에 포함시켜 자연습지화하는 것이지, 자위더제이 및 델타 간척지와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임병식기자 montlim@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