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오울루까지는 북쪽으로 500㎞. 헬싱키 중앙역을 출발한 기차는 9시간만에 오울루역에 도착했다. 역 플랫폼을 나서자마자 눈보라가 앞을 가린다. 월요일 아침 7시 4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플랫폼을 빠져나오는 사람들로 역 구내가 활기차다.

서류 가방을 들거나, 등에 가방을 맨 출근길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오울루 IT클러스터에 근무하는 연구원과 직장인들로서 주말을 이용해 헬싱키에 있는 집에서 휴식을 취한 뒤 야간 침대기차를 이용해 출근하는 길이다. 오울루 테크노폴리스의 파울리나씨는 “대부분 헬싱키에 거주지를 두고 있으며, 노키아 등 몇몇 기업은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헬싱키와 오울루 간 전세 비행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접한 철로 주변의 들녘은 온통 은세상이다. 이곳에서 북극이 멀지 않은 까닭에 11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설원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넓은 땅에 인구는 520만명에 불과하다보니 훼손되지 않는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있다. 핀란드는 백야를 즐길 수 있는 몇 달을 제외하면 겨울이 길다. 내다 팔 수 있는 천연자원도 없다. 결국 핀란드 IT산업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국가경쟁력을 확보한 그들만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핀란드 ‘오울루(Oulu)’는 스웨덴 ‘시스타(Kista)’와 함께 북유럽 IT산업의 성장거점으로 이름나 있다. 시스타가 스웨덴을 IT강국으로 만들었다면, 오울루는 핀란드를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핀란드에서 차지하는 오울루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오울루 역시 시스타와 마찬가지로 기업, 대학, 정부 등 혁신주체가 유기적으로 참여해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혁신도시로 재탄생했다. 오울루 IT클러스터를 핀란드 성장의 핵으로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울루는 IT클러스터로 육성되기 전인 1982년만 해도 인구 1만 9,000명의 소도시에 불과했다. ‘타르와 연어’를 중계하는 무역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5년이 흐른 지금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근무하는 인구 13만명의 기술혁신 도시로 변모했다. 오울루 IT클러스터는 핀란드 국내 총생산의 4%와 연구개발 예산 30%,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핵심 거점이다. 130만평의 IT클러스터에 노키아, 에릭슨, 지멘스 등 내로라하는 세계 정보통신기업 250개사가 입주해 IT 강국의 꿈을 현실로 옮기고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의 핀란드 내 위상은 절대적이다. 인구 520만명에 불과한 핀란드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키아라는 걸출한 글로벌 기업이 있었다. 노키아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30% 이상, 헬싱키 증시 시가총액의 60% 이상, 핀란드 총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핀란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핀란드 국민기업이나 다름없는 노키아의 성장거점이 바로 오울루 IT클러스터이다.

핀란드는 과감한 기술투자와 산학협력, 우수한 인적자원, 부패없는 선진적 기업환경 구축, 안정적인 정치시스템을 바탕으로 오늘날 국가경쟁력 1위에 올랐다. 여기에 IT클러스터인 오울루를 비롯한 20여개의 사이언스파크가 밑바탕이 됐다. 오울루 IT클러스터는 1958년 오울루대학이 자리잡은데 이어 73년~74년 노키아 모바일 텔레콤 연구개발(R&D)센터와 국가연구기관인 VTT(핀란드 기술개발연구청)가 들어서먼서 틀을 갖췄다. 1982년에는 테크노폴리스가 설립, 본궤도에 올랐다. 테크노폴리스는 입주 기업을 지원하는 전문적인 관리운영기관이다. 또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와 컨설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고 있다. 1998년 8월에는 세계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되기도 했다.

오울루 테크노폴리스의 설립자가 오울루시인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설립 당시 오울루시의 지분은 50%였으나 지금은 7~8%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오울루 테크노폴리스의 창업지원 기능은 중요하다. 창업을 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인큐베이터 기능을 지원하는데 이곳을 거친 창업기업의 생존율은 무려 90%에 달한다. 오울루시 관계자는 “기업들이 오울루에 입주하려는 이유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기관이 있고, 필요한 전문인력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동종 기업이 몰려있어 정보 교환은 물론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국가연구기관인 VTT 일렉트로닉스에서도 확인된다. VTT는 연구가 본업이지만, 중소기업 육성과 교육은 물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테크노폴리스에 대한 정부 지원도 집중되고 있다. 총리실 산하 과학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육, 과학기슬정책을 일원화하고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50%를 정보통신 클러스터에 집중하고 있다. 또 핀란드의 대표적 자금지원정부기구인 테케스(TEKES·국립기술청)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테케스는 기업 기술개발이나 제품개발을 위한 펀딩뿐만 아니라 기술이전에 대해서도 관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산업구조를 지식기반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대학 교육시스템을 산학협력 중심으로 개혁했다. 연구개발 예산의 25%를 대학에 배분, 산학협력 기반을 마련했고, 대학은 학생들이 회사에 다니며 학위를 마칠 수 있도록 파트타임 수업제를 실시하고 캠퍼스에 실습공장을 지었다. 또 현장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 출신을 이공계 교수로 임용하는 등 산학협력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공동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고, 정보 및 인력교류가 활발하다. 특히 오울루 이노베이션과 테크노폴리스 두 회사를 설립해 입주 기업을 지원하고 인큐베이팅에 필요한 서비스 제공 및 유망기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오울루 IT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필두로 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산업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새만금간척지에 조성 예정인 산업단지에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유치함으로써 이곳을 정보통신 클러스터로 육성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선도기업 유치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거점 기업이 주도하는 클러스터가 조성될 경우 주변 관광자원과 어울려 새만금지역이 미래 한국을 먹여살릴 성장동력으로 변모할 수 있다. 새만금지역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전주 군산 익산 김제 부안 등 주변 지역을 배후지역으로 삼는다면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 관건은 선도기업 유치과 주변 인프라 구축이다.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 책임자 파울리나씨

“1982년에 설립된 테크노폴리스는 오울루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연관이 있다. 핀란드 전체에 930개사 1만 2,000명이 테크노폴리스의 지원을 받고 있다.”

파울리나씨는 오울루시를 IT클러스터로 육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 “관련 분야 인재를 공급하는 오울루 공대가 위치한 데다 공항이 20분거리에 위치해 물류비용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테크노폴리스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앞으로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며, 새만금내부개발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테크노폴리스의 25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만금사업이 추진 중인 전라북도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싶다”면서 “새만금 내부개발에 앞서 고급 인력 양성이 가능한 교육기관이 있는 지, 공항 등 다른 지역에 비해 경쟁력있는 요소가 있는 지 등 주변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파울리나씨는 “중앙정부-지방정부-대학-기업 간 활발한 산학연관 클러스터 구축과 전문화된 관리 운영주체 설립이 어우러질 때 IT클러스터가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병식기자 montlim@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