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그림을 그리면 할아버지 하반영화백님이 나도 모르게 생각나요'

하다감, 전주 하반영미술관서 첫 개인전 '흐르는 시간, 머무는 기억: 그림으로 남기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2월 25일 11시33분

루금 하다감이 26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전주 하반영미술관서 '흐르는 시간, 머무는 기억:그림으로 남기다'를 갖는다.

'한국의 피카소’로 불렸던 고(故) 하반영 화백(1918~2015)의 작품을 연중 감상할 수 있는 곳에서의 전시인 만큼 남다른 의미를 더한다.

이번 개인전은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그동안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는 자리이다. 다양한 재료와 소재,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엔 '우리, 끝까지 함께', 동상이몽: 아빠와 엄마', '달콤한 신혼' 등 서양화가 선보인다.

'우리, 끝까지 함께'는 교회에서 도망쳐 나온 신부, 그녀의 손을 잡은 이는 신랑이 아닌 다른 남자이다. 불안과 혼돈 속에서도, 그녀는 오직 사랑을 향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는 순간적인 감정적 충동이 아니다. 견고한 사회적 틀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선택이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함께 불행을 감수할 용기야말로 결국 두 사람을 행복에 이르게 할 터이다. 이는 제29회 통일미술대전 서양화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우리, 끝까지 함께'는 저 멀리로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데 남여가 손을 굳게 잡아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모습이다.작가는 사회적 단절로 멀어진 이웃과 공동체가 다시 손을 맞잡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중함을 일깨운다.

'동상이몽: 아빠와 엄마' 는 두 사람의 포즈가 주제를 잘 살리고 있다.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각 딴생각을 하고 있음을 뜻하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포스터는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을 그렸으며,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달콤한 신혼' 도 독특한 느낌의 작품이다.

작가에게 그림은 공기처럼 늘 곁에 있는 존재였다. 세상을 보게 된 순간부터 할아버지 하반영화백의 그림, 어머니 김용옥시인의 그림, 그리고 가족들의 작품이 제 일상을 채우고 있었다. 그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배경처럼 늘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다 지난해 봄, 늦은 나이에 정말 우연히 붓을 잡게 됐다.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미술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누구의 그림도 아닌, ‘나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거창한 의지나 뜨거운 열정에서 비롯된 결심이 아닌 살아온 시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쌓여온 기억들이 어느 순간 그림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며 알게 된 것은, 혼자서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감사하게도 그 주변엔 늘 따뜻한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점점 즐거워졌고, 작품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됐다.

작가는 "늘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도 저는 그림과 나란히,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면서 "지금이 중요하고 내일이 중요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중요하기에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차곡 차곡 나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고 했다.

작가는 화폭에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미술에 대한 꿈과 사랑, 열정을 담아냈다. 화려해 보일 수야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도 잘 알고 있다. 조화와 균형을 위해 그렸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작가는 숙명처럼 그 고통을 은근히 즐긴다. 무엇을 쓰고 그리더라도 예술 세계는 한 발을 깊숙이 들여놓은 삶이라는 치열한 무대의 투영(投影)이다.

기대와 갈등, 수 많은 번민은 모두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결국, 다름이라는 조화로운 색으로 빈 공간을 채워나감으로써 하나의 예술을 탄생시키지 않나.

작가는 상하이 인터내셔널 페 쑤저우 한중국제예술 살롱전, 우시 한중예술가 국제스케치전, 광복 80주년 특별전, 'YOU 畵 그리고' 화유예인회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29회 통일미술대전 대상(서양화), 제6회 부산국제미술대전 입선, 아주국제미술대전 장려상, 제21회 평화예술제 특선(서양화), 제20회 온고을미술대전 입선(서양화) 등을 했다.

작가는 베이징영화대학 영화사 석사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립영화 제작 촬영에 참여했으며, 중국 영화 시나리오 번역을 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지면에 ‘영화에세이’ 및 ‘영화해설’ 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속속풀이' 1.2.3,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영화 이야기', 시네마 로그: 영화를 풀다'를 펴낸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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