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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적대를 넘어, ‘마주침의 윤리’를 실천하기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6월 19일 13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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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는 계간 '문학과사회' 2025년 여름호(통권 150호)를 펴냈다.

150호를 맞이한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의 키워드는 ‘이후–상상’이다. 답이 없는 양자택일의 상황을 넘어설 상상력, 적대와 혐오의 상황을 극복할 대안들, 쉽게 들리지 않는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 이러한 것들을 고민하면서 천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정지된 새로운 미래를 향한 탐구와 상상을 지속해보고자 한다. 다가올 미래마저 분노와 환멸에 저당 잡히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우리는 어떤 탐구와 실천을 지속해야 할까? 우리는 과연 다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음 여덟 편의 글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고민을 확장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박권일의 글은 12·3 내란 사태를 ‘특수한 일탈’적 사건이 아닌, 이미 적대와 혐오로 넘실대는 ‘글로벌 트렌드’에 동조하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계엄 이후의 사회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협소하고 진부한 프레임을 넘어 철학적·정치사회적으로 상상하기 위해 요청된다. 아즈마 히로키, 리처드 로티, 이졸데 카림, 제임스 퍼거슨 등의 이론을 교차적으로 검토하며 그는 ‘약한 결속weak ties의 정치’를 성찰하고 나아가 ‘공감’에 기반을 둔 ‘현존presence의 정치’를 새롭게 제안한다.

기유정의 글에서는 ‘마주침의 윤리’가 또 다른 대안으로 사유된다. 보수 대중과 진보 진영의 극단적 대립을 혐오라는 감정을 통해 설명하는 이 글은, 스피노자의 정서이론과 엘리아스 카네티의 대중이론 등에 기대어 보수 대중을 다양한 욕망이 공존하는 사건적 주체로 재구성할 것을 요청한다. 적대 세력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정치적 무력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필자는, 슈퍼 사장님과 폐지 줍는 할머니 사이의 ‘마주침’이라는 일상적 윤리의 장면을 통해 ‘전선’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요청한다.

김수아의 글은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광장의 정치와 온라인 담론의 흐름을 분석한다. 특히 ‘주목 경쟁’과 ‘응징의 서사’ 그리고 ‘속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온라인 혐오 구조’를 개개인의 심성의 문제가 아닌 플랫폼의 구조로 인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요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만나는 속도의 정치 구도에서 파편화된 조각들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기 위해, 종국적으로는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차별금지법”의 원칙과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문영의 글에서도 극단적인 대립 사이 일상적 ‘마주침’과 ‘현전’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위해 중요하게 숙고된다. 필자의 고백처럼 우리는 누구나 세계에 대한 ‘관찰자·심판자’인 동시에 자질구레한 일상과 연루된 ‘생활인’이다. 소래에서 관찰한 지역 선주민들과 이주 청년들의 연결을 소개하며, “마주침은 대개 극적이지 않으며, 가능성을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자질구레한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점, 그럼에도 마주침이 시작되면 “제 자리 한 뼘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행위”가 무수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민서의 글은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에서 시작된 ‘탈탈탈 순례(2030 탈핵 탈석탄 탈송전탑 희망 기후 도보 순례)’를 소개하면서 지역의 환경운동이 그곳과 거리가 먼 서울의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장의 민주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확인한다. 특정 지역의 환경운동은 광장에 등장한 목소리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일이자 기후 위기 시대의 전 지구적 시민운동으로 확장되는 일이다. 이 글을 단지 지역의 환경운동 보고서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배세진의 글은 12·3 내란 사태 이후 ‘정치적 뉴노멀’ 상황과 관련하여 지식인의 시대적 존재 및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이 글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연구자들은 기존의 앎과 지식이 붕괴한 상황에서 ‘보편적·비판적·공적·정의로운’ 지식인이 될 수 없으며, 탈진실의 시대에서 전문가로서도 기능할 수 없게 된 자들이다. 발리바르를 따라 ‘독특한 지식인’의 개념을 제안하는 그는 “자신이 놓여 있는 현행성이라는 역사적 독특성 속에서 증상적 읽기를 수행하며 진실–말하기를 실천하는 독특한 지식인”의 의무를 음미한다.

김수환의 글은 지난 10여 년간 소비에트의 문화와 사상, 특히 소비에트 후기의 ‘활기’와 ‘담대한 이미지’ 들을 파고들었던 한 연구자의 회고록이다. ‘사라진 미래’와 ‘영속적 현재’라는 감각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로부터 온 미래’를 사유하는 것, ‘비판 정신’이 아닌 바로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소비에트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로부터 영감을 받은 두 가지 개념, 즉 ‘가난한 삶poor life’과 ‘우울’의 감각을 앞으로의 연구 주제로 제시하며 마무리되는 이 글은 그의 후속 연구를 기대하게 한다.

김홍중의 글은 “종말론적인 것의 진정한 의미를 ‘마지막 시간’에 두지 않고 ‘경계’와 ‘한계’와 ‘타자’와의 피할 수 없는 마주침으로 옮겨 사고한다면, 우리는 ‘다른’ 종말론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종말론적 상황에서는 “자기–비움, 자기–삭감, 자기–제한, 자기–박탈, 자기–삭제를 의미하는 케노시스”에 기반을 둔 수동적 주체성이 나타난다. 김홍중이 말하는 이러한 종말론적 주체는 기후 위기와 생태 파국의 상황 속 가능한 존재 방식에 대한 발견이자 일종의 제안이기도 하다.

이번 호는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의 선정 소식과 함께 더욱 풍성하게 꾸려졌다.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외에 소설 부문에서는 손보미, 위수정 소설가가, 시 부문에서는 김상혁, 백은선 시인이 응모작에 대한 예리한 평가와 따뜻한 감상을 나눠주었다. 시 부문에서 김사라를 신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아쉽게도 소설과 평론 부문에서는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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