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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성전투 이후 장흥으로 돌아온 동학농민군



기사 작성:  이종근 - 2022년 10월 26일 11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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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갑오년 석대들 함성, 붉은 동백꽃으로 피어나다(지은이 이판식, 출판 호밀밭)'는 동학농민혁명의 4대 격전지인 전남 장흥 탐진강 석대들의 함성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집이다. 영암 금정산에서 발원한 130리 탐진강은 유치와 장동을 지나 한 많은 장흥읍 석대들을 적시고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장흥 석대들은 정읍 황토현, 공주 우금치, 장성 황룡과 더불어 동학혁명의 4대 격전지로 꼽힌다. 이 격전의 한가운데에서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고(事人如天)’, ‘있는 놈 없는 놈 함께 사는 세상(有無相資)’을 꿈꿨던 남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로 탄생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5년 전 조선 민중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동학을 했다. 외세로부터 제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나선 백성들을 일본 제국주의와 민 씨 척족들은 무참히 학살했고 15년 뒤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어쩌면 여전히 우리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변화의 물결에 눈과 귀를 막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전남 장흥 출신의 저자 이판식이 8년에 걸쳐 다양한 문헌과 자료 조사 및 현장 답사와 고증,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갑오년 전남 장흥 탐진강 석대들의 함성을 남도 동학의 풍운아 이방언 장군의 생애를 중심으로 박진감 있게 풀어냈다. 소설은 계사년(1893년) 겨울, 부용산에 오른 장흥접주 이방언 일행의 모습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이곳에서 이방언장군은 한 해 전, 장흥 유림의 동문록에서 삭적된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자네도 알다시피 공자님께서 무어라 하셨는가? 정치라는 것이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를 넉넉히 하며 백성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란디, 조선에 들어온 주자학은 백성들이 먹고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 알량한 이(理)가 중허냐 기(氣)가 중허냐 하는 명분론에만 빠져서 당파싸움만 일삼다 보니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말이여?” 그렇게 유림에서 쫓겨나기를 불사하면서도 동학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이방언 장군은 이듬해 갑오년(1894년)을 맞아 다양한 신분과 배경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동학혁명 4대 격전지 중 하나인 장흥 석대들 전투를 지휘하게 된다. 그리고 그해 겨울, 최소 3,000여 명이 넘는 수많은 동학농민군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15년 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장흥은 동학농민항쟁에 대한 처절한 보복으로 인해 기미년 만세운동 당시 유일하게 만세를 부르지 못하는 지역이 됐다. 명문가의 후손으로 뛰어난 학식을 겸비했던 이방언 장군이 어떤 계기와 고민을 통해 동학에 투신하며 장흥부 대접주가 됐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이 바라본 당시 사회의 모습은 어땠는지, 그리고 이들이 결국 꿈꾸었던 세상의 정체는 어떤 것이었는지, 소설을 읽다 보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고뇌가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져 앉은 자세를 바로잡게 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남도 끝자락 탐진강 석대들에서 쓰러져 가는 조선을 지키고자 죽창을 들고 일어섰던 3만여 동학농민군들의 함성과 숭고한 정신은 후세를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갑오년 탐진강 석대들의 붉은 피는 지금도 흐르고 있다. 잊지 않아야 잃지 않는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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