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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물감의 두께를 조절함으로써, 더 강한 마티에르적인 효과를 얻어 낼 수 있다

정읍시립미술관 기획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한국 미술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북 활동 작가들의 걸작 <5> 윤명로의 ‘균열’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09월 26일 13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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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출신 윤명로(1936- )는 1960년대 이후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작가로서 현재 예술원 회원이기도 하다.작가는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를 졸업, 국립현대미술관(2014), 국립타이중미술관(2013), 리움 삼성미술관(2011), 일본예술회관(2010), 로마건축협회회관(2004), 예술의전당(2001), 광주비엔날레(2000), 스페인 국립판화미술관(1999) 등 다수 출품했다. 옥조근정훈장(2002),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07), 대한민국보관문화훈장(2009) 등을 받았으며,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 도쿄 마쯔다 국제판화비엔날레 심사위원, 광주비엔날레이사, 일본판화가협회명예 회원 등을 역임,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보며, 들리지 않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들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나타내려는 나의 행위를 나는 격이라 부르며 영원히 익명의 땅으로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같이 말하는 작가는 1960년 미술가협회 창립멤버로, 당시 젊은 작가였던 그는 독립 이후 권위적인 국전 중심의 화단에 새롭게 도전하며 덕수궁 담벼락에 획기적인 전시를 주도했다. 1960년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판화를 지속적으로 작업하면서 1968년 ‘한국판화가협회’를 창립했다. 1969년 미국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프랫 그래픽센터에서 1년간 판화를 공부한 후 귀국한 그는 한국 현대판화의 초기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 판화 작업 이 후 그 만의 독자적인 추상 회화 세계를 구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벽B(1959)’는 샤르트르의 소설 '벽'이라는 소설을 통해 받은 영감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제8회 국선 특선작이다.

"... 동족상쟁의 비극적인 잔해가 아직도 흰 눈으로 덮여 있던 무렵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실존주의가 썰물처럼 대학가를 휩쓸고 지나갔다. 졸업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국전에서 '벽B'로 특선을 한다. 샤르트르(Jean-paul Sartre)의 소설, '벽'에 등장하는 사형수가 주인공이다. 절망과 부조리의 극한 상황을 휴머니즘이라 했다"(작가노트 중에서)

샤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이다."라고 말한다. 절망과 부조리에서 인간다움은 인간의 의지가 담긴 선택이다. 전쟁을 겪고 여전히 혼란스런 사회에서 그려진 작품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1960년대 초 엥포르멜(Informel)에 영향받은 ‘벽’, ‘원죄’, ‘회화’, ‘문신’ 연작들과 1970년대 초반의 기하학적인 요소가 도입된 판화인 ‘자’,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걸친 ‘균열’, 1980년대의 ‘얼레짓’, 1990년대의 ‘익명의 땅’, 2000년대의 ‘겸재예찬’ 연작 등으로 변모해왔다.

‘균열 78-520’(1978)은 그의 ‘균열’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기에 나는 자(Ruler)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한다. 자는 인간과 인간의 약속이고 규범이다. 그런데 세계는 룰러=통치자들에 의해서 규범이나 약속이 붕괴되고 있었다. 나는 짐짓 갈라지고 녹아내린 자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자유를 갈망한다. 나는 자의 형태는 사라지고 우연성과 부조리의 경계에서 균열만을 남겼다. 갈라지고 터진 흔적들은 의미 없는 추상이 됐다"(작가노트 중에서)

‘균열’은 우연적으로 보이는 작품 표면과 작가가 의도성을 가지고 물감의 두께와 색채를 조절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작가가 우연히 물감의 갈라짐을 발견한 바, 이를 의도적으로 물감의 두께를 조절함으로써, 더 강한 마티에르적인 효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캔버스 위에 안료를 두껍게 겹쳐 바르고 이것이 건조해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균열과 그 사이로 드러나는 캔버스 자체의 질료감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가의 초기 작품 이후 지속된 재료에 대한 관심이 잘 드러나지만, 조작을 최소화하고 시간적 전개에 따라 생기는 우연적 효과 등은 보다 동양의 자연주의와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태도는 이후 제작된 ‘얼레짓’, ‘겸재예찬’ 연작 등에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후 나는 화폭 위에 무작위로 선을 그어대며 그 흔적들을 얼레짓이라 불렀다. 얼레를 감고 푸는 짓거리처럼 마음을 감고 푸는 몸짓의 흔적들로 비우고 채워 나갔다"(작가노트 중에서) 얼레짓은 우연과 작가의 반복적인 표현방법의 결합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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