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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인아 잘 가거라!!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01월 10일 14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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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선 (교수, 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친자·입양 전통이 우리하고 비슷한 나라가 중동의 이란이다. 순수혈통과 자기가 낳은 자식의 애착이 강하다. 이러한 연유로 시험관아기 시술기술이 세계적이다. 복제양도 세계 두 번째로 만들었다. 복제·시험관아기·난자조작 기술이 뛰어나, 한때 배아줄기세포기술이 우리나라와 함께 세계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유사하여 여러 전통적문화 즉, 씨내리·씨받이, 백일기도 그리고 사촌·육촌간의 품앗이 입양 등으로 가문을 이었다. 전혀 다른 입양은 엄격하였다. 입양했다하더라도 평생 숨기고, 중도에 알게 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야기되고, 이는 드라마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한편 필자가 1990년 미국유학시, 친한 미국인 교수가 한국아이를 입양했다고 기뻐하며 자랑하였다. 이 아이의 돌잔치에 한국에서 공수해온 족두리와 한복을 마련해서 축하해주러 갔더니 앉을 수 없는 장애아였던 것이다. 축하는 해주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내 자신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슬프고 창피하였는지 모른다. 참으로 많이 울었다. 최대의 고아수출국이었다는 것이 창피하였다. 국내 입양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나라는 이란처럼 자기 혈통을 고집하고 입양에 대해서 꺼리게 된 것인가? 이러한 전통적인 마인드는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폐쇄적인 마인드를 바꿔야 될 때가 왔다. 우리나라가 못 살았을 때, 6·25전쟁 고아들을 전 세계에서 받아 주었듯이 이제는 열린마음으로 국내입양은 물론 해외에서의 입양을 개방하여야 한다. 물론 20~30여년 전 보다는 좋아졌다. 사실 이미 전국적으로 다문화가정이 많이 정착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입양에 대해서도 서구선진국처럼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선진시민으로서의 가능성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정인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전국이 충격받아 대통령이 담화문을 내고, 국회에서는 약 20여건에 가까운 `정인이 법'이 상정되고 있다. 검찰·경찰은 검찰·경찰대로, 입양기관은 기관대로 벌집 쑤셔 놓은 듯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어려운 입양이 정인이 사건 이후에 입양이 더 어려워지고, 입양된 후에도 입양부모나 가정의 계속 감시와 여러가지 법적제약이 가해질 경우 입양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고 절차가 복잡해 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전례로는 미혼모가 아이를 입양하는 절차라든지 베이비박스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가정폭력은 계부모·양부모보다는 친부모에 의해서 더 저질러진다. 계부모·양부모 슬하에서 가슴으로 나은 따뜻한 정을 듬뿍 받아서 친부모보다 더 나은 환경의 가정이 대부분이다. 대통령도 담화문에서 가정폭력, 경찰의 감시·계도 문제보다는 입양을 많이 언급하였다. 입양에 대한 편견을 또 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에 있어서 재앙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년에 수십조 원의 국가예산을 쏟아 부어도 출산율이 증가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입양절차·미혼모·미혼부 건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고 사회에서 편견·차별이 없어지니까 출산율이 증가하였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 그 단계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정책은 장려정책이 아닌, 모든 것이 금지 또는 하지 말라는 정책이다. 새로운 법을 계속해서 제정·입법·공포하고, 다스리고, 검열하여 하니까 매년 공무원 일만 명씩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공무원 일만 명의 신규채용이 출산율 증가에 효과가 단 0.001% 라도 있었는가? 다시금 재고를 해야 된다.

정인이 사건을 친부모·양부모·계부모 등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가정폭력문제를 원래취지와 다르게 입양문제로 끌고가는 보도매체 책임도 있다. 따라서 말초적·선정적 기사류의 대처보다는 근원적인 면을 찾아서 입양도 장려하고, 미혼모·미혼부의 아이들이 떳떳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사회와 정부가 해야 될 일이다.

정인이는 양부모가 조금만 더 이성적인 환경과 사랑으로 접근했으면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자랄 수도 있는 예쁘고 밝은 아이었다. 우리사회 모두의 인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 어린 것의 고통은 이번으로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정인아 미안하다!! 정인아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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