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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고통 숨죽인 50여년, 베트남전 고엽제 고통의 눈물 누가 닦아 줄까


기사 작성:  안병철
- 2020년 09월 13일 07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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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0월, 한국군 전투부대가 월남에 상륙해 1973년 1월 베트남전 휴전까지 33만명의 꽃다운 대한민국 청춘들이 먼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고 귀국 후에는 고엽제라는 피해를 겪으며 50여년간 숨을 죽이고 있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강력한 파병 요청과 그에 대한 대가성 ‘브라운 각서’를 통해 한국의 경제발전, 경부고속도로 개설 등 오늘날 경제대국의 밑거름이 된 아이러니한 사건이다.

아직도 제대로 된 처우나 보상이 없는 월남참전 전우들과 고엽제 피해자 15만여명, 그 가운데 전북 고창지역에도 222명이 비참한 삶 속에서 자손들의 눈치까지 보는 실정이다 이들의 일상을 들어다 봤다. /편집자 주



◇ 고창군 고엽제 ‘고도 환자’ 조병록씨

고창읍에서 평생 전기제품 수리업을 하고 있는 조병록(76. 사진)씨는 월남참전 때문에 평생 고엽제로 인한 질병과 싸우며 자손들에게 죄인처럼 그리고 내 집 마련도 못한 인생 성적표를 내민다.



그는 월남 또는 고엽제 말만 나오면 눈물부터 글썽이며 어리둥절 하는 평범한 가장.

이웃 장성군에서 6남매 셋째인 해방둥이로 태어난 그는 누구나처럼 군에 입대 후 전방에서 일등병을 20개월째 보내던 어느 날 월남파병 특명을 받고서 25일간 보너스 휴가까지 주어졌다.

이는 사망신고를 부모에게 알리듯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시작인 것이다.

‘가면 죽는다’로 알려진 월남파병은 부대원 200명 가운데 유일하게 선택받은 강제적 인생험로의 길, 1969년 10월말일 부산항에서 거창한 환송식과 함께 출항 그리고 2주간의 여정 후 베트남 나트랑항에서도 군악대의 환영식이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이는 1964년 박정희정부가 미국과의 국가안보와 경제문제 그리고 6.25전쟁에서 맺어진 자유우방의 지원에 보답 등으로써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의 1차에 이어 건설지원단의 2차, 그리고 수도사단과 제2해병여단, 제9보병사단까지 해병대와 육해공군 총 34만6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조씨는 군수지원부대인 십자성 제1야전 공병중대의 발전실 전기담당였다.

어느 날 태풍에 여러 개의 전붓대가 넘어지자 ‘야간긴급복구’에 따라 풀 한 포기 없이 오직 선인장만 자라는 고엽제의 폐허 다낭에서 사투를 벌리며 임무를 완수했으나 감전사고로 공중에서 가까스로 구조되기도 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척추통증부터 고엽제 백화점 병처럼 매일 한 주먹씩 약을 복용하며 2003년 대장암 수술 후유증, 황반변성, 치아 몰수, 여름에도 솜이불, 손자의 신경주머니 돌출병 등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성실하고 남다른 기술이 있어서 결혼했더니 이미 다수의 병치레를 하고 있었다”며 “코로나 영웅은 있지만 고엽제 영웅은커녕 주변의 싸늘한 시선도 감당하기 어렵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 고엽제 무엇이 문제

‘나뭇잎을 말려 죽인다’는 제초제인 고엽제는 월남전 당시 사용한 화학무기이며 자연과 인간에게 남긴 재앙이다.

맹독성 비소 ‘카코딜’ 성분이 포함, 독성물질 다이옥신이 포함된 고엽제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발암성과 기형유발성이 강해 ‘나무를 죽이는 고엽제가 파월용사를 죽인다’라고 실상이 폭로됐다.

이는 ‘적이 보여야 싸움을 하지요’처럼 정글 원시림이던 월남지역의 늪지대 강수림을 제거하기 위해 1961년부터 고엽제 살포 필요성이 대두, 1972년까지 9,100만kg을 월남의 25%지역에 살포해 전 세계 인구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였다.

치명적인 치사율을 가진 고엽제는 강물을 비롯해 식수, 식물, 비바람, 음식물 등으로 피부 접촉과 구강계통, 호흡기계통 등으로 감염됐다.

요즈음 같으면 코로나19바이러스 대응 전략인 2m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외출자제 등과 흡사한 지경이다.

하지만 무덥고 후덥지근한 전쟁터에서는 항공기 살포 때에 시원하다며 온 몸으로 샤워라도 할 지경이었다는 것.

미군의 고엽제 사용은 우군의 작전수행에서 시야 확보를 위해 삼림과 식물을 고엽화하며 적의 농작물을 파괴와 은닉처 차단, 심리전의 제압 등을 내세웠다.

50여년간 흘린 고엽제 환자의 눈물과 고통은 주로 일광과민성 피부염과 만발성 피부포르피린증, 폐암과 후두암, 기관암, 전립선암, 연조직 육종암, 임파선암, 당뇨병과 백혈병, 고혈압, 뇌졸중, 무혈괴사증, 지루성 피부염, 다발성 신경마비, 중추신경장애 등 백화점식 질병을 안고 있다.



◇ 국내외 소극적 관심

미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제조한 미국의 7개 고엽제 회사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파월용사들로부터 고엽제 후유증의 피해보상소송을 당했다.

이는 1962년 미 케네디 대통령의 제초제 사용 허락과 남베트남 정부의 고엽화계획, 하지만 1964년부터 베트남에서 사용된 제초제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시작돼 1970년에야 사용중지와 함께 잔여 고엽제는 바다에 폐기됐다.

미 제조사로부터 우리나라도 후유장애 6급 이상 1만명에게 월 150만원 상당을 받아내고 있다.

이는 1991년 설립된 (사)대한민국고엽제 전우회가 1997년 국가보훈처로부터 허가에 이어 1999년 고엽제제조사 상대 특허권 가처분신청, 2006년에 총 1만6,801명 가운데 말초신경병과 버거씨병을 제외한 11개 질병이 인정, 6,795명의 일부 승소로 보상의 길을 텄다.

이와 함께 이들은 2000년 미국의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UN본부 방문과 침묵시위, 호소문 전달, 고엽제 참상 홍보 그리고 베트남지부 창립 등으로 진행됐다.

대한민국 국회는 2007년 1월 ‘고엽제후유의증환자지원 등에 관한 법률 개정’ 법률 제8228호로써 고엽제후유증환자와 고엽제후유의증환자 및 고엽제후유증 2세환자로 규정해 수당과 입학금, 수업료 등을 포함한 장학금을 지원받도록 하고 있다.



◇ 고엽제전우회중앙회 전북지부고창지회 고정상 회장 인터뷰

“고창군민의 따뜻한 관심이 그립다 그리고 생존한 회원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 싶다”





1995년 김영태 초대회장에 이어 조병록, 최구원 회장을 이어 받아 2007년부터 고창지회를 이끌고 있는 고정상(75. 사진)회장은 222명의 회원들의 서러움에 잠 못 이루고 있다.

그는 군에서 지원한 봉고차를 이용해 고엽제 가족의 병원 수송부터 애경사를 챙기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두 열악한 형편과 다발성 질환들 때문에 애만 태우다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와중에도 그는 “고엽제 전우들이 국가보훈단체와 유공자라는 사명감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고창읍 화산마을 출신인 그도 1970년에 16개월간 월남에 파병돼 린호아에서 작전상황병으로 근무, 당뇨, 고혈압, 척추, 만성 두드러기, 20년간 전립선비대증 등 다양한 질병의 피해자.

고향에서 고 회장은 ‘성심사’ 인쇄업을 비롯해 유진건설 운영 등을 마치고 지금은 동료 회원들의 삶을 돌보고 있다. /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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