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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인문학을 엿보다 37회] 원근법, 공간을 나풀거리게 하다

조반니 마사초, 성삼위일체
"성삼위일체, 사실의 세계를 그려 이성의 세계로 인도하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6월 25일 13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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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제 원(전주 완산고등학교)





조반니 마사초가 제작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화 `성삼위일체'는 미술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다. 그는 처음으로 원근법을 도입하여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그린 프레스코화인 `성삼위일체'를 그렸는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벽을 뚫고 그린 그림 같아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지만 당시 화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천대는 받지 않았지만 일꾼의 신분이었다. 화가는 기능공이었고 수동적으로 주문받은 이미지를 묘사해 내는 사람이었다. 예술가에게 새로운 사상이나 창조적인 고뇌, 천재성은 기대되지 않았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예술가의 사명의식은 없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창조성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무난한 삶, 무난한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성삼위일체'는 매우 치밀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소실점 투시법으로 그려졌는데 그림을 보면 개선문의 일부처럼 보이는 기둥과 천장 장식 면이 실물처럼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더구나 보는 사람의 위치에 그림의 소실점을 정해서 그림을 볼 경우에 현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은 마사초의 그림에서 오늘날 입체영화를 보는 현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마사초 그림의 가치는 신앙적 종교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이성에 입각한 과학의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보듯이 앞으로의 근대미술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원근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원근법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공간사상(空間事象:3차원)을 규격된 평면(平面:2차원) 위에 묘사적으로 표현하는 회화기법으로 투시도법이라고도 한다. 즉 한 점을 시점으로 하여 물체를 원근법에 따라 눈에 비친 그대로 그리는 기법이다. 기법에서 기준은 소실점(消失點, vanishing point)이다. 소실점은 가상의 지점으로 원근법에서 실제로는 공간상에서 평행한 직선들인데 그림에서는 한 점에 모이게 할 경우에 만나는 점이다. 즉 평행선이 되어 있는 것을 평행이 아니게 그릴 때에, 그 선이 사귀는 점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점은 무한 원점이며 원근법의 종류에 따라 복수의 소실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위의 고흐가 그린 방 그림을 보면 방안의 공간에 투시가 들어가 있다. 천장과 바닥 모서리를 보면 대각선으로 각도가 들어가 있어서 앞쪽과 뒤쪽이 구분된다. 그 모서리 대각선 4개를 쭉 따라가면 한 점에서 만나게 되고 그 점이 가상의 점인 소실점이다. 소실점을 알게 되면 작품에서 공간적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원근법의 가치는 첫째, 미술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중세 미술에서도 언급했듯이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은 예술이기 보다는 그리스도교적 원칙에 바탕을 둔 추상적 기록이었다.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며 종교적이고 상징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원근법은 지금의 서양문화의 핵심적 요소인 실체성과 과학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즉 수학적 비례체계를 통해 대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다. 둘째, 서양적 관점에서 표현(무엇을 드러냄)이란 질서를 갖춰야 하는데 이를 따르고 있지만 기존의 미술에서 대상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과는 다르게 주어진 공간을 적절하게 통제함으로써 질서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다. 즉 회화에서 3차원적인 공간을 통제하여 2차원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사물과 공간을 실제처럼 묘사할 수 있는 가시적 체계를 마련했다. 즉 질서원리를 지키면서도 현실감을 드러내도록 구현했다. 부연하면 대상을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조직화하고 질서화 했다. 원근법이 발명되기 이전 회화의 대상은 대상 자체의 중요성과 의미에 따라 선정되고 묘사되었다. 즉 그림의 내용과 의미가 중요한 것이지 기법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근법을 통한 대상의 표현은 관객이 그림을 보는 이유를 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즉 그림의 감상포인트를 다르게 했다. 구체적으로 내용보다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인간이 세계의 대상에 대한 의식을 전환시켰다. 보는 사람의 눈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재배치하고 2차원적인 평면에 3차원적인 공간감과 거리감을 표현하여 사람의 눈과 대상 사시에 모종의 원칙을 정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양미술의 총체적인 형식이 이것에서 비롯되었다.

셋째, 원근법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비례체계에 기반을 두는 점에서 예술적인 원리이기 보다는 과학적인 원리이다. 화가들은 대상과 시각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추상성을 원근법이라는 과학을 이용해 통제하기 시작했다. 즉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요소가 배제되고 무질서를 바로잡은 것이다. 신체의 눈과 마음의 눈이 분리되는 ‘시각의 이성화 작용’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현실과 가장 똑같이 그리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려고 하는 대상과 화가 사이에 창문틀을 하나 배치한 후 창문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다. 즉 “아는 대로 그리지 말고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두 가지 단순한 원리에 기초하는데 첫째, 빛은 직진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눈은 빛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리를 적용하면 인간이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영상으로 변환하는 현상을 그림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사물이 멀어지면 화면에는 작게 보이고 가까우면 크게 보일 것이라는 사실은 그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의 특징은 거리에 따라 크고 작아지는가를 포함해서 눈에 보이는 것 모두를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제공한 것이다(수학적 계산은 근대과학의 토대였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시각의 이성화를 설명할 수 있다.







어두운 방이라고 불리는 이 광학장치는 직육면체의 상자모양인데 상자의 한쪽 면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이 구멍을 통해 들어온 바깥의 풍경 화상이 상자 내부의 반대 편 벽면에 도립상(倒立像)으로 비춰지는 원리이다. 17세기 화가들은 이것을 이용해 그리고자 하는 풍경이나 대상의 전체적인 형태를 도안했다. 사진기의 전신이다. 이 장치는 “본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시각적 패러다임을 뒤흔들었다”

실체를 선호하는 서양인들에게 과거의 비이성적인 시각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즉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즉 인간의 감각이 갖는 불확실성을 극복하게 해주는 최적의 도구였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17, 18세기 근대성의 형성에 중요한 도구로 상징되었고 객관적 현상과 자기관찰의 모형으로 사용되었다.

즉 세상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식을 정립하게 했다. 근대 이성적 세계관의 문을 서서히 열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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