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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소금길은 1500여 년 전 가야 기문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5월 21일 14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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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 남원시 아영면사무소 총무계장이 '지리산의 염두고도(鹽·豆 - 소금과 콩)'를 전자책으로 발간했다.

남원에서 35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광한루 600년 이야기를 비롯, 판소리 사설 사전, 남원정명 1260년, 가야 기문국 크고 작은 이야기, 가왕 송흥록 동편제 등 20여권이 넘는 향토사 자료를 펴내기도 했다.

지리산의 '염두고도' 이른 바, 소금과 콩길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정리했다.운봉 사람들이 오갔던 지리산 소금길의 시원은 1500여 년 전 가야 기문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의 왕국이라는 가야의 나라 기문국은 첩첩산중 지리산 속에 든 나라였다.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했던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바다로 나아갈 길은 지리산 화개재를 너머 하동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그때로부터 생겨난 길은 운봉사람들이 서리 태 콩을 짊어지고, 화개재를 넘어 화개장터로 가서 소금으로 교환해 오는 소금길이 되었다. 화개장터의 유명했던 서리태콩 두부는 이처럼 해서 생겨났었다. 삼십 명으로 이루어진 운봉의 소금무데미들은 지리산 소금길을 넘나들면서 소금과 서리태 콩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그 소금무데미 선창 꾼은 훗날 동편제 소리꾼이 되기도 했다. 지금 지리산 소금 길에 놓여 있는 간장소, 소금장수무덤 같은 흔적과 하동댁과 운봉댁의 소금장수 이야기는 지리산 염두고도의 정체성이다.중국의 운남성을 지나는 차마고도 보다도, 더 사람 냄새난다는 한국의 염두고도가 지리산에 있고, 그 출발지 운봉은 십승지지의 한 곳이기에 충분한 고을이었다.

운봉은 지리산 분지 속에 있는 작은 나라와도 같은 고을이었다. 외부 세계와도 소통이 쉽지 않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생활 세계를 가졌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노는 것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교육의 방법까지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자급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금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자라는 붉나무에서 소금을 얻어 생활을 했다. 소금나무라고 불리는 붉나무는 오배자 나무라고 불렀으며, 가을이 되면 이 열매껍질에 생긴 짠 성분을 소금대용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사용하게 될 소금이 필요해 지리산 벽소령을 넘어 화개장터까지 가서 소금을 구해왔다. 지리산의 소금 길은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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