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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칸트와 봄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3월 25일 13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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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혜(심상 시치료 센터장·전주대 겸임교수)



봄이 왔지만, 봄을 만날 수 없다. 마음 놓고 꽃놀이 한번 갈 수 없다. 불안한 시대에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해소할 방법이 묘연하다. 자칫하면 엉뚱한 곳에서 위험한 불꽃놀이가 이뤄질지도 모른다. 감염되지 않는 안전한 곳, 사이버 세상에서 마음껏 욕망을 분출하는 식으로 비뚤어지기 십상이다.

최근 텔레그램에 성 착취물을 찍고 유포시킨 혐의로 구속된 조주빈은 평범한 대졸자 출신이다. 정보통신을 전공했지만, 글을 잘 썼고 대학 학보사 편집국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상위 수준의 성적을 유지했고 장학금도 여러 번 받았다. 대학교에 재학 중, 성폭력 예방 대책에 관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최근까지 열성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왔다. 누가 봐도 수더분하고 성실한 이미지다. 본격적인 수사가 없었다면 겉과 속이 다른 삶을 계속 이어왔을 것이다. 그가 벌어들인 돈만해도 억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는 말이 있지만, 그는 개만도 못한 일을 저질렀다. 경찰이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만 해도 피해자는 74명이며, 이 가운데 미성년자 16명이 포함되어 있다. ‘박사방’ 안에서 그는 황제였다. 그가 결단하여 지시하면 자금 세탁, 착취물 유포, 대화방 운영, 성폭행까지 행하는 신하들이 있었다. 피해자의 신체 일부에 칼로 ‘노예’나 ‘박사’를 새기게 하고 마음껏 유린하며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사이버 세계 안에서 그는 돈과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존재였다. 그런 한편,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무의식적 방어기제인 ‘취소’를 활용해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문제는 조주빈만이 아니다. 박사방의 유료 회원수는 1만 명대이고, 성 착취물 공유방 60여 개를 행한 참여자를 단순 취합한 숫자는 26만 명에 달한다. 자존감이 낮고 겁이 많고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는 이들이 주로 숨어서 마력을 발휘하게 되는 곳이 사이버 공간이다. 특히 스트레스와 불안이 많은 시대, 물질문명이 가속화되는 현대에 또 다른 조주빈이 바톤을 이어받아 활약할 수 있다. 여론이나 경찰의 수사에 잠시 숨죽이고 있다가 적발되지 않는 고도의 방법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변종을 일으키는 것은 코로나뿐만 아니다.

철학자 칸트에 의하면, 실천 이성을 발휘하여 선의지 즉, 도덕 법칙을 따르려는 의지야말로 인간이 동물적 차원을 넘어서게 한다. “너 자신에게 있어서나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나 인격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라는 칸트의 말을 되새길 때가 왔다. 그럴 때, 고운 봄빛을 제대로 만날 수 있으리라. 부디, 이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리지 않기를, 그 정도로 우리의 인간성이 무디어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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