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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죽산(竹山)이요, 서면 백산(白山)이라

박대길 ‘부안의 동학과 동학농민혁명-녹두꽃은 지지 않는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2월 26일 17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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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죽산(竹山)이요, 서면 백산(白山)이라'

부안군이 '부안의 동학과 동학농민혁명-녹두꽃은 지지 않는다(글 박대길 문학박사, 부안군청 근무, 시 강민숙)'를 펴냈다. 조선시대 전해 온 비결(秘決)에 백산은 수많은 백성이 능히 생활할만한 공간으로 ‘고부백산(古阜白山) 가활만민(可活萬民)’이라고 했다. 또, 삼면이 동진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만 겨우 사람이나 말이 통행할 수 있는 요새지였다. 뿐만 아니라 주변은 기름진 들판이 널리 펼쳐져 있는 옥야천리(沃野千里)로 호남의 곡창지대였다. 이곳엔 해창(海倉)이 있어 세곡(稅穀) 4,000여 석이 저장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47미터에 불과하지만 들판에 우뚝 솟아 있어 군사적으로 집결과 감시가 용이한 전략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바로 이같은 백산의 지리적 환경 등을 고려해 전봉준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은 고부봉기 때부터 백산을 전략적 요충지로 설정했다. 고부봉기와 무장기포를 거쳐 백산대회가 개최됐다.

따라서 백산 주둔은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했다는 현실적인 측면과 비결의 현장인 백산에서 혁명의 성공을 다짐하는 정신적 측면도 있었다. 즉, 동학농민군의 백산 주둔은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는 민중의 희망을 담았다. 저자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백산에서 가까운 홍해 마을에 살던 기행연이 쓴 '홍재일기'를 통해 백산대회가 역사적 사실로 확인했다. 특히 백산에 집결한 군중에 대해서 3월 23일(3. 28)엔 ‘동학도인’으로, 3월 27에는 ‘동학군’으로 표기함으로써 3월 26일 개최된 백산대회를 통해 동학도인이 동학군으로 편재됐고, 이로써 본격적으로 혁명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이 책자는 동학의 창도와 교조신원운동, 제1차 동학농민혁명, 전주성 점령과 집강소 설치 운영, 제2차 동학농민혁명.항일의병전쟁 등으로 구성, 해월 최시형이 예언한 부안에서 꽃이 피고, 부안에서 결실을 맺으리라.(開花於扶安 結實於扶安)"는 이 땅을 보듬고 있다. 부안군은 민선 7기 들어 '백산성 성지화사업'과 함께 '부안 백산 동학농민혁명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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