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금요수필]개(犬)

박경숙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4월 17일 12시33분

도시에선 사람이 줄어가는 대신 개는 늘어난다. 불과 한 시간 산책길이면 족히 개 대여섯 마리는 만날 것이다. 늦은 오후 마을 옆 도토리 숲으로 이어진 산책길은 실로 한적해서 마음마저 정화되는 듯하다. 오직 이방인의 접근을 기별하는 개들의 경고성만이 놀란 내 마음을 채근하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

언젠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걸어 나올 때다. 가족용 승합차 한 대가 내 앞을 쌩하니 지나치더니 곧 새빨간 가죽 코트에 조금 지적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 뒤로 모과만 한 강아지가 ‘껑충’ 뛰어내리더니 쪼르르 그녀를 뒤따랐다. 개를 안은 여자는 내 쪽을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더니 이내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쳐 총총히 사라졌다.

도시는 미니멀리즘 건축양식이란 수식어가 빠지면 그냥 성냥갑이다. 그 건축 양식조차 패션 경향처럼 사회적 추세로 잠깐 머물다 사라지곤 한다. 그래서일까. 특정한 개나 차에 대한 강박도 예외가 아니다. 어릴 적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길렀던 ‘바둑이’는 토종개여서 애완동물이라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체구도 작고 순해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어쩌다 산책 하러라도 나가면 저편에서 집채만 한 수입 개가 다가올 때마다 바둑이를 물을 까. 신경이 쓰이곤 했다. 언제부턴가 그 큰 개들이 봄철에 서리처럼 사라지고 없다.

도시에서 개가 늘어나는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회색 콘크리트 숲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감정적 결핍과 사회적 변화가 낳은 결과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개는 주로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도왔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의 가속화로 개의 역할도 변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주택보다는 좁은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연과의 단절을 보완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기 위해 개를 택했다. 또 1인 가구의 증가로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개는 위안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개에 대한 애착이 지나쳐 인간처럼 대우하며 과도한 의인화를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만족의 도구로써 소비를 부추기고, 책임감 없이 입양했다가 유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저녁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어느 집에 무슨 개가 있는지 손금처럼 훤하다. 어떤 녀석은 제법 낯이 익었는지 꼬리까지 살랑인다. 비록 반갑다는 인사는 못하지만 제 딴엔 정다움의 표시인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개도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큰 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 양옥집 현관 앞에 목줄이 묶인 채로 “컹컹” 커다랗게 울부짖던 셰퍼드…. 그래서 요즘 산책길에서 내가 하는 일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길옆에 핀 야생화를 찾으며 걷는 일이고, 둘째는 짐짓 무심을 가장하는 일이며, 마지막은 개를 피해 돌아가는 일이다.

박경숙 수필가는

전주 출생. 2016년'계간수필'에 수필 추천 완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미용실에 가는 여자', 2021년 전북수필문학상 수상2022년 산호문학상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 이종근 기자의 최근기사

[금요수필]개(犬)

[금요수필]개(犬)

파로호에 묻혀 있던 역사의 진실

장수의 농부가 키운 동록 낀 사과는 단단하고 맛있다

책의 세계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무화과가 만들어내는 조금은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맛

노래에 얽힌 추억담은 가슴을 따사롭게 해준다

기획특집으로 '한강' 등 다채로운 콘텐츠 실려

동국진체 서풍의 고차원적 서예미학 정밀하게 분석

한옥마을 하얀 양옥집 53년만에 도민의 품으로 돌아와

배우 김신록·서현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문 연다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새만금 지속가능 개발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캠퍼스텃밭에 모종 심는 시민들

노인대학 입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