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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도인이 된 야니 김도연 기타리스트, 고창에서 둥지를 틀다.



기사 작성:  안병철 - 2025년 03월 31일 06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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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이 된 숨은 고수 야니 김도연의 소름 돋는 베사메뮤쵸 기타연주를 고창에서 만나다”

지난해 여름날 기타리스트 야니 김도연 ‘유튜브 천만조회 돌파, 500회 특집방송’이 고창읍 한옥카페 경운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아울러 여행인플루언서는 ‘어느 노인의 소름 돋는 기타연주 베사메무초 실연주자 야니 숙소 고창 삼인당 방문, 유튜브 293만 조회’ 등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고창 구시포해수욕장 근처 송천당에서 순국 115주기 ‘안중근 유묵 서각 전시 및 영호남 음악회’에서도 야니 김도연 단장 주관의 음악회가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이는 30여년전 ‘서기1999년’ 그룹사운드 4기 멤버로 활약하며 기타 연주의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 야니 김도연(62. 사진) 단장이 최근 고창군민이 된 것이다.

‘서기1999년’는 ‘남자라는 이유로’를 히트시킨 조항조 가수가 1978년에 6인조 록그룹으로 데뷔, 제4기 일렉기타로 활약한 야니 김도연 단장도 전국적 인기와 실력의 발판이 된 것.

그는 5인조 보컬그룹 ‘서기19999년’으로 1978년 1집 ’정주고 가네‘와 1979년 2집 ’외출‘ 등 추억의 올드팝7080 그때 그 시절로 명성을 날렸다.

당시 남해군 이동면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건너가 학창시절 클라이넷과 일렉기타에 심취,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면서 가르쳤던 외길 인생이 어느덧 환갑을 넘기고 도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양산시 거주의 김은희(사진) 큰 누님은 “부산 신학대에서 실용음악을 배우는 등 실력향상에 남다른 노력파였다”며 “무소유의 나눔과 배려의 아름다운 성품을 가졌다”라고 미소지었다.

‘들에서 부풀거리다’는 ‘야니’는 2007년 자신의 공연 소감에 대해 어느 명장으로부터 받은 것.

그의 수제자인 기타 강습생 야을 옥미연, 야농 옥정선 자매는 “대학에서 음악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난 야니 김도연 단장을 만났고 스승으로 삼았다”라고 자랑했다.

이름하여 ‘야씨 패밀리’ 50여명 가운데 야니, 야을, 야농 외에도 야안, 야촌, 야풍, 야해, 야황, 야평, 야탁, 야청 등이 고창인이다.

야씨 패밀리 리더인 그는 거제도에서 30여년을 비롯해 정읍시에서 5년, 담양 거주 등에 힘입어 영호남 예술인의 인재 발굴과 지휘자가 됐다.

그는 한국문화예술교류연맹 창단 및 총감독을 비롯해 고창 성내면에 ‘류강문화예술원’을 통해 사람책 도서관 운영 등으로 7세대의 귀촌 성과에도 기여하고 있다.

류강문화예술원은 지난해 4월 ‘7번째 사람책 도서관’으로 지당 서윤덕 시인을 초청해 고창문학의 폭을 키우고 ‘그 맘 알아’의 최단 시어도 소개됐다.

일우 박성환 화가는 4년전 고창으로 이주해 작품활동을 지속하다가 우연히 야니 김도연 단장을 만나 그의 실력에 반했고, 이송 고성주 퇴임 미술교사도 그를 만나면서 노래 재능 발굴과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서 눈을 떴으나 보지 못했던 바울이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되는 기적과 영적, 육적 눈이 뜨는 기적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야니 김도연 SNS에서는 ‘상처받은 영혼들과 아름다운 음율로, 여러분과 소통합니다’ 등으로 치유문화도시 고창군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야니 김 단장은 “멋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만나면 모두가 친구가 된다”라고 말했다.

그의 무소유와 채식주의, 도의 세계에 대해 다수는 “어느 노인의 진짜 기가막힌 기타연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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