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가면과 실존

[책마주보기] 밀란 쿤데라의 '농담'(서운정)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3월 24일 07시59분

사람이 진담만을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범박한 예로 惡이 있어 善이 드러나는 것처럼 ‘농담’은 살아가는데 활력소가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농담 속에 가면이 엇걸쳐 있거나 속임의 의도가 들어 있다면 불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 지점을 관통하는 밀란 쿤데라는 그의 장편소설 ‘농담’을 통해 한 개인이 던진 가벼운 한 마디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비극으로의 변모 과정을 그려낸다. 그는 문제의 공간을 체코슬로비키아 공산 정권을 토대로 살아가는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한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개인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사회적 가면’의 문제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데 등장인물 중 헬레나는 당에 대한 충성심의 가면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개인적 욕망과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면과 충돌하고 야로슬라프 역시 자유가 억압되는 체제에서 전통적 민속 음악에 대한 개인적 열정을 어떻게 정당화할지 고민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모두 실존적 자아와 체제의 요구 사이에서 균열을 경험한다. 실존으로서의 개인은 사회적 규범과 기대에 부합하려고 노력하지만 진실한 자아와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특히 주인공 루드빅은 여자친구에게 “낙관은 인민의 아편이다. 건강한 정신은 회의주의자에서 나온다. 트로츠키 만세”라고 보낸 가벼운 농담으로 인해 젊음과 사랑을 유린당하는 운명을 맞는다. 그의 말이 농담이 아닌 반혁명적 행위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당에서 축출되고 강제노동수용소로 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쿤데라는 전체주의 사회가 어떻게 언어를 왜곡하고 개인의 삶을 사소한 사건 하나로 파괴하는지 보여주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언어는 더 이상 개인적 표현이 아니라 체제의 논리에 의해 재해석됨을 언급한다. 이로써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부정하는 공간에서 주인공의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닌 비극의 단초가 된다.

루드빅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동료들에게 복수하려고 하지만 그마저 허무하게 끝이 나는데 쿤데라는 루드빅의 비극을 감상적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유머와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이 처한 부조리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실존주의적 시각에서 인간의 행동이 간혹 무의미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허상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루드빅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또 다른 우연 속에서 길을 잃는 설정이 그것이다. 쿤데라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덧없고 미약한 것인지를 루드빅이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보여준다. 더하여 역사와 개인의 문제 혹은 우연과 필연이 중첩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경도된 이념이 아닌 실존적 진리에 있음을 묻는 이 책을 덮으며 작금의 계엄 정국이 한층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서운정 작가는

군산 출신으로, 제18회 ‘바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솔바람소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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