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신생전북론]지구 풍랑 먹구름 시대에 빛은 어디에서

43회. 우리 미학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0월 25일 20시52분

#사진:수운동학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우리에게 전승된 고유 미학을 저작 ｢유역문예론｣과 ｢문학과 예술의 다시개벽｣에 펴낸 임우기 비평가 - 2024.10.25 원평집강소에서

1.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까닭은

43회 글은 한강 글지(작가의 우리말)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여 우리 고유의 미학에 관한 논의를 소개하며 필자의 의견도 덧붙이려 한다. 우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비평가 임우기는 이렇게 썼다

"이 땅에 수천 년에 걸쳐 ‘거대한 뿌리’를 내린 오래된 느티 혹은 노송(老松)이 있다고 치자. 온갖 벌레들한테 공격당해 고사(枯死) 지경에 내몰렸지만, 오랜 세월을 견딘 '지극한 인고(忍苦)의 마음'에는 기적이 일어나기 마련, 우리 겨레의 '늙은 나무'는 마침 자신의 싱그런 가지 하나에 경이로운 열매를 맺는다. 바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겨레의 '거대한 뿌리'가 맺은 경이로운 결실이다. (왜냐면 -인용자) 이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져온 성과는 비단 서구문학계만이 아니라 동서를 불문하고 세계문학사가 소위 19세기 말 ‘근대이행기’를 비롯해서 오늘에까지 한국문학에 은폐된 ’이 땅의 유서 깊은 혼‘을 새로이 인지하고 인정하며 마침내 이 은폐된 ’한국인의 영혼‘에 대한 경의(敬意)를 표시하게 된 점이다.....한강의 주요작인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그 자체가 품은 의미만 해석해도 그 속엔 ‘이 땅의 혼’인 유서 깊은 ‘전통적 영매(巫)’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이를 이 땅의 위대한 근대사상인 수운동학을 통해 해석하면, ‘시천주’에서의 ‘시’의 알레고리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사실 놀라운 점은 언론이나 문학평론가들이 쓴 한강의 수상작에 대한 논평들이 한결같이 서구 근대소설론이나 G.루카치 소설이론을 중심으로 한 리얼리즘론, 이어지는 후기구조주의 문학론에 의존하거나, 이도저도 아닌 서구적 자유주의 문학론, 어떤 경우엔 고대 희랍 문학과의 비교 등등에서 그 비평적 논거를 찾고 있을 뿐이고, 더 놀라운 점은, 어느 언론 문학기자도, 비평가 누구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제목인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닌 깊은 함의(含意) 혹은 이 제목들이 포함하는 이 땅의 오래된 영매의 전통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관심밖이라는 점(에서)......시간이 지날수록 나로선 실망감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위원들 평을 따라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시적 산문” 같은 말들을 서방의 저명한 비평가들의 평가 정도로 수용해야지, 이 말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일 필요는 전혀 없다." - 임우기, 2024.10.24 페이스북에서 -

나는 임우기의 비평정신에 충분히 공감하며, 서구미학정신이 판치는 현실에 대해 공분한다. 임우기는 위의 비평정신을 ｢유역문예론｣과 ｢문학과 예술의 다시개벽｣에서 여러 문인들의 작품을 비평하면서 고유한 우리 문예이론을 동학에 바탕하여 독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고유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동학혁명 성지 백산 동뫼 - 김남수에 따르면 백산은 해발 47m의 낮은 곳에서 미륵산, 모악산, 방장산, 두승산, 내변산 높은 곳을 굽어본다는 것이다. 이 굽어보는 시각이 하늘과 땅이 역전되는 다시개벽일 것이다.

2. 동뫼의 어머니 미학을 모시다.

김제만경의 한들(대야大野)에 여기저기 엎은 사발 모양으로 봉긋 솟은 작은 사발 봉우리를 동뫼, 똥뫼라 부른다. 그곳뿐 아니라 우리 산천 곳곳에 동뫼가 있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다는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그 산이 바로 동뫼다. 동뫼는 흔히들 작은 언덕이나 산을 말하는 동산의 다른 이름이다. 이 동뫼마다는 그 지역의 지령이 전하는 이야기, 설화, 신화가 있기 마련이다. 토속성이란 지령이고, 그 땅에 떨어진 하늘눈물(하늘염원)이라는 동뫼이고, 인령(人靈), 지령(地靈), 천령(天靈)이 흐르는 수령水靈이기도 하다. 원시성, 애니미즘성, 생명성이란 근대에 대칭한 복고지향성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어머니 마음(모심母心)의 모심(모실 시侍)이라 여긴다. 어머니 마음은 생물학적 성도, 사회적 성이라는 젠더도 아니다. 어머니란 탄생, 기름(農), 여름(農, 열매, 추수의 뜻), 낳음과 순환의 어머니를 말한다. 우리가 그저 지나치는 동뫼는 그 상징이다. 동뫼가 없다면 한들은 얼마나 밋밋할 것인가? 우주적 대순환의 생성이라는 사건의 과정이 곧 모심(侍)이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비유가 모심(母心)이다. 젖 물린 엄마보다 신령하고 성스러운 것은 없다. 동뫼는 대지에 젖을 물리고 있는 모령(母靈)이다.

나는 이게 민중성이라 본다. 억압에의 저항성은 민중의 본령이 아니고, 그를 포월하여 산천초목 우수마발을 기르고 모실 시(侍)를 행하는 모심(母心)이 민중성이다. 한들(大野)에서 동뫼는 바람벽, 그늘산, 추수한 벼낟가리, 한들의 가슴 같은 것이다. 동뫼란 어머니 젖가슴이다.

필자가 10월 6일에 안내한 동학혁명 성지인 백산 동뫼에 올라 문명비평가 김남수는 이렇게 썼다.

"백산에 가는 동안 여러 '똥뫼', 산맥줄기와 무관하게 외딴 산들이 더러 보였는데, 다 백산이 아니었다. 백산(白山)은 "서면 백산이요, 앉으면 죽산이라"고 흰 옷 입고 죽창을 든 동학군 자체가 산(山)이 된 형국을 일컫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산이 광활한 호남평야에 만만치 않게 오똑하니 솟아오른 '똥뫼'라는 것을 실감했다. '똥뫼'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강주영의 안내에 따르면 백산에서 사방을 둘러볼 때 모든 산들이 휘휘 돌아 눈에 다 들어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악산, 미륵산을 비롯하여 한다하는 산들이 평야 끝 멀리 도열해 있었다. 동학군은 이 개방된 시야를 바탕으로 사방을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천하를 한눈에 거머쥐는 시각적 파지의 권력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 산은 높지 않다. 해발 47미터라고 하니 산 축에 끼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 백산에서 사방의 우뚝한 산들,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산들조차 굽어본다. 즉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굽어보는 특이한 시야가 확보된다.

마치 프리드리히의 그림 ｢해변의 수도자｣처럼 검푸른 바다보다 낮은 땅의 걷는 이가 되레 그 검푸름을 굽어보듯이, 그럼으로써 하늘을 모시듯이, 하이데거는 이런 현상을 "높은 곳으로 떨어진다" 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썼다. 까딱 잘못 하다가는 저 우뚝한 산봉우리로 굴러떨어진다는 것이다. 천손족의 존재론은 하늘이 하류이다. 떠내려가서 닿는 곳, 하늘, 백산에서 동학군들이 누린 '굽어보다'라는 시각은 그러한 하늘모심이 있었다고 하겠다." - 김남수 2024.10.8 페이스북-

동뫼를 미학 차원에서 새롭게 착목한 이는 김남수다. 이는 근대이성주의 미학과는 다르다.

3.민중들의 문득 열리는 홀개미학(忽開美學)

수운의 다음 글을 보자

鏡投萬里眸先覺月上三更意忽開　

경투만리모선각 월상삼경의홀개

거울을 만리에 투영하니 눈동자 먼저 깨닫고, 달이 삼경에 솟으니 뜻이 홀연히 열리도다.

거울은 무엇일까? 대상을 비추는 것이다. 무엇으로 비추는가? 자기 자신들이 각자 가진 기준, 이론, 성리, 이성이란 것이다. 그런데 수운은 놀랍게도 눈동자가 먼저 깨닫는다고 한다. 눈은 누구의 눈인가? 모실 시의 눈이다. 모실 시(侍)의 눈이란 접령강화(接靈之氣內有降話- 논학문)의 신령함을 말한다. 이성이 아니라 '령'의 눈이다.

수운에 따르면 접령강화는 이렇다.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않는다." (視之不見聽之不聞 - 논학문) 이것을 임우기는 귀신의 묘용이라 하고 문예작품에서 '숨은 화자'라고 하였다. 작품이 직접 드러내지는 않으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지극한 기운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겨레의 얼이 구르는 일이라 하겠다. 즉 령과 직접 대화하지 않아도 대화하는 묘용이다. 논증, 인과가 아닌 통각이다.

누구의 령과 접하고 말하는가? 삼라만상 우수마발의 령과 접하고 말한다. 이를 한강의 소설을 두고 임우기 비평가가 말한 내용을 내식으로 옮기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에서부터 이 땅의 지령, 인령, 천령들의 기미가 온다는 것이고 그 령들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울의 눈을 모실 시의 "접령강화" 눈으로 산알할 때 "홀개忽開" - 막힌 것들이 홀연히, 문득 열린다고 수운은 말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막힌 것이 일순 뚫어 솟는 다시개벽의 "홀개미학"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런데 이 "홀개"가 깊은 밤에 달이 솟을 때라는 것이다. 이 달이란 포태, 생성의 역(易)인 것이다.

지면 때문에 다음 회에 아래 글이 이어집니다.

3. 북극성이 뿌린 빛방울 은하수의 남행로 - 남사상(南思想)

4. 동이의 궁궁을 미학

5. 지구 풍랑 먹구름 시대의 남홀개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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