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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만경제재소에 피어난 문화의 꽃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9월 08일 16시00분

호남평야를 다른 말로 만경평야라고 부른다. 만경이란 완전수인 만(萬)에, 논밭을 재는 단위인 경(頃)을 합한 것이다. 경(頃)은 주로 중국에서 쓰는 농토의 단위이다. 100 묘(畝)를 1경이라고 한다. 1묘가 30평이니, 1경이면 3,000평이다. 그러나 만경은 수치로 헤아릴 넓이가 아니다. 끝이 없이 드넓은 벌판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넓은 토지의 넉넉함으로 인재들을 키웠다.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와 함께 세계 3대 거사로 이름을 남긴 부설거사는 만경에서 수행했고, 미륵신앙을 일으킨 진표율사, 조선시대 이적을 남긴 대승 진묵, 한국불교를 부흥시킨 탄허 등이 만경 출신이다.

그 외에도 무도한 무신정권에도 정도를 지켰다는 경대승, 최초의 판소리 연구서인 ‘조선창극사’를 쓴 상곡 정노식도 만경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에 들고 일어난 만경장터 기미 독립만세운동은 드넓은 만경의 지조와 기세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속에 농지는 힘을 잃었다. 수만 평 만경의 땅이 서울 중심의 건물 한 채 값도 안 된다. 농지에 둘러싸였다는 이유로 자꾸 뒤처지는 상황이 안타깝다. 지난 주말 막 퇴직한 후배와 함께 만경을 찾았다. 만경제재소에서 열리는 ‘꽃으로 피는 모일장’이라는 문화 행사가 있어서다. 솔직히 축제 구경보다는 지인의 초대에 인사차 간 것이다.

행사가 열리는 만경제재소는 그야말로 폐허였다. 작년 12월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된 후 빈터만 남았다. 60년 이상을 목재를 가공해온 공장이 사라지자 주민들의 허탈감이 컸다. 나무만을 켠 것이 아니라, 문화 이벤트를 통해 소멸해 가는 지역을 추스르는 일을 해 왔기에 더 그랬다. 재건을 위해 각계에서 성금이 전달됐다. 사기업의 피해를 공적으로 돕는 일은 평소 노블리스 노블리제를 실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

화재가 있기 전부터 만경제재소 유성기 대표와 (유)굿만경 김진희 대표는 지역 브랜드화를 목표로 ‘문화모일장’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화마가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듯했으나, 지역문화를 살리려는 그들의 의지까지 태우지는 못 했다. 올해 행정안전부 주관 2024년 고향올래 공모사업에 '안녕! 굿만경 창작제재소'가 선정돼 국비와 지방비 16억을 확보해 탄력을 받았다.

축제의 백미는 마을 어르신들의 패션쇼였다.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펼치는 행진에 모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초가을 밤을 수 놓은 판소리와 성악, 그리고 식전 공연인 통기타와 ‘밴드 죠’의 음율은 폐허의 제재소 공간을 아름답게 채우기에 충분했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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