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돌·취석(翠石) 송하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전 전북도지사)의 초대 개인전이 22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세종특별자치시 박연문화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세종시문화관광재단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회와 한글 문화의 세계적 확산 및 한글서예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은 그 일환으로 '한글서예 초대전'을 갖는다.
이는 '한글문화도시 세종' 사업의 하나로,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한글 서예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작가로선 지난해 한국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이 '거침없이 쓴다, 푸른 돌·취석 송하진 초대전'을 개최한 후 열리는 뜻깊은 자리다.
주제는 '한글의 멋을 담은 K-서예'로, 100% 한글 작품으로 선보인다. 작가는 2022년 6월 전북도지사를 끝으로 40여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뒤 서예가의 인생을 시작했다.

아호는 푸른 돌이란 의미의 '취석(翠石)'이다. 이는 양홍정(楊弘貞)이 백락천(白樂天)에게 푸른 돌 셋을 선사한 데 비롯된다.
이는 지금도 날마다 새롭다는 의미다. 그래서 끊임없는 생각의 원천이 된다. 생각은 순간이고 기억은 짧아져가니,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호처럼 '파란 돌'처럼 묵묵히 서예에 정진하고 있다.
물론 송 전 지사가 갑자기 붓을 든 건 아니다. 유소년기와 청년기 등 성장하는 내내 서예와 한문을 들으며 자랐고, 그의 아버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 선생은 한국서예를 대표하는 서예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초대전에서 과거의 법칙이나 형식·틀 등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쓴 한글 서예 작품을 보여준다.

한글의 어순에 맞게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쓰는, 한문이 아닌 한글이 주인이 되는 서예, 한국적 느낌과 분위기가 우러나오는 한국성을 추구하는 서예를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다.
'우리는 파도치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괜찮아 우린 함께 라서 항상 든든해'
작가의 작품 '섬'이다.
파도치는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어쩐지 함께 있어도 외로워 보인다. 외로운 섬들에게는 수시로 불어오는 바람도, 끊임없이 두드리는 파도도 그저 거칠게만 느껴질 뿐다. 외로움에 지친 섬들은 옆에 있는 섬에게 손짓한다. 혹시 그와 친해진다면, 그래서 함께 손잡을 수 있다면 바람도 파도도 견딜만한 것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파도는 여전히 나를 흔들고 바람은 자꾸만 괜찮냐고 물어온다.
'지금 여기', '오손도손' , '나답게' , '가나다라마바사랑' , '돌' 등 자유자재로 쓴 한글 작품들이 선보인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용해 마치 글자가 살아 숨쉬는 듯 쓴 작품이 많다
작가는 "물이고 싶다. 때로는 불이고 싶다 아ㅡ드디어는 돌이고 싶다!!!"고 했다.
‘돌’이라는 한 글자는 언뜻 보면 그림 같기도, 글씨같기도 하다.
그가 쓴 글자 '돌'은 돌처럼 투박하고 우직하다. 단단한 이미지가 전달된 듯 전체적으로 무겁고 안정적이다.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붓의 운용은 둔탁하면서도 진행이 더디다. 삼각형 구도 속에 이루어진 돌의 형상은 글자 속의 그림이다. 그의 글자가 곧 그림인 것은 붓의 다양한 운용 때문이다.'돌'은 초성 ‘ㄷ’은 좌에서 우가 아닌, 우에서 좌로 그림 그리듯 자유롭게 운필한 것인데, 마치 돌이 오랜 풍파에 패이고 깎여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갈 듯 겨우 붙어있는 듯하다. '돌'은 농담이 활용되어, 붓의 강약과 꺾임, 더딤과 줄임, 그 반대의 세라 할 수 있는 환원과 확산, 펼침의 형국으로 그림처럼 자유롭게 표현된다.
먹의 색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진하고 단단해지며 넓고 굵게 힘을 실어, 돌의 종성 ‘ㄹ’은 돌이 지면에 단단히 박혀있는 듯하다. 마치 단단하고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굳세면서도 안정감 있다.
그의 '돌'은 단순한 자연의 돌을 넘어선다. 돌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자아의 내면을 투영한, 하나의 사물이면서도 주관적인 자아다. ‘돌’이라는 글자는 돌의 형상을 입어 그림처럼 인지되고, 맛깔스러운 시상을 내재한 시인의 외마디 시가 된다. 그의 서예는 곧 그림이자 시다. 글자이면서 그림이 되고 시가 되는, '돌'이라는 서체 하나에 시서화가 공존하는 놀라운 현상이다.
그는 한 작품, 한 작품에 멀어져가는 젊은층의 서예 관심도를 붙잡는 한편, 한국서예에 제안하고 싶은 속 깊은 그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
작가는 서예가 진정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의 법고 과정을 겪어야 진정한 필력이 생겨나고, 그 필력에 의해서 생각에 따라 자유자재로 어떤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인문적 식견이 더하면 좀 더 의미와 가치가 높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서예는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솔직하고 아름답게 따뜻한 생각을 세상에 풀어 놓는 일이라고 했다.
작가는 그동안 서예가 한글보다는 한문과 같은 다른 언어가 중심이 됐다면서 그래서 600년 전통의 역사속에서 이제는 서예도 한글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장준석 미술평론가는 "구수한 큰 맛 같으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서체를 구사한 취석의 서예는 개성이 있으면서도 특별한 형상미와 조형성을 맛볼 수 있게 한다"며 "담담하게 써 내려간 독창적이고도 유연한 서체는 우리의 정서가 담겨 더욱더 한국적이며 생동적이다"고 했다.

이어 "송하진 작가의 시서화는 마치 세상에 사물과 질료도 있지만 물 자체도 존재하듯이 근원적이면서도 활동적이며 살아있다. 마냥 멋 부리는 시서화가 아니라, 만남과 소통을 통해 생명성을 표상하는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 시서화이다. 그래서 서민적이면서도 담박하고 풍요롭다. 오랜 시간 숙성된 예술가의 기질은 서민적인 한글 서예로, 소박한 시로, 그림으로 드러난다. 글씨도 시도 그림도 솔직 담백한 성품처럼 거침이 없다. 타고난 감성과 예술가적 기질이 손끝에서 집중되어 질박하면서도 무기교적인 획의 한글 서예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필 속에는 자유로움과 담박함, 현란함, 노련함이 혼재한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일반인들에게 한문 위주의 서예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면서 "서예의 대중화를 위해 한문보다는 한글로 쓰고, 현대의 글쓰기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로보다는 가로로 쓰는 등 변화가 있어야 혼란을 막을 수 있고 특히 젊은 층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882-1956) 선생은 서예가이자 유학자였고, 아버지 강암 송성용선생은 근현대 한국서예를 대표하는 대가다.
그는 1952년 4월 29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여뀌다리에서 서예가 강암선생과 농사짓는 이도남(李道男) 여사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5년 이후 전주에 정착한 후, 1980년 제24회 행정고등고시를 통하여 공직의 길에 들어섰으며 전라북도청과 행정자치부 등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을 두루 경험했다.
2005년 고향인 전북과 전주발전을 위해 정년이 7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명예퇴직하고 정치에 입문, 전주시장 8년 전라북도 도지사 8년 16년간 재임하면서 전주 한옥마을을 세계적 명소로 가꿨으며, 탄소섬유의 개발과 한스타일산업, 문화예술관광산업, 신재생에너지산업, 홀로그램산업 진흥 등에 노력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일제에 항거하여 단발령과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한문학과 서예에 전념한 집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평생을 갓과 한복으로 일관하며 아버지 강암선생으로부터 주로 문학과 서예술을 익혔다.
형제자매 모두가 학문과 문화예술적 분위기의 가문에서 함께 성장, 어린 시절부터 시와 서예술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쉬운 언어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강조하는 문학활동을 중시해왔으며, 과거의 인습과 형식, 틀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쓰는 서예, 한글이 주인되는 서예 등 서예혁신에도 앞장 서 노력하고 있다.
김제 종정초, 익산 남성중, 전주고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서 1년을 마치고 고려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고려대학교 대학원를 졸업했다. 김구용 선생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시를, 성당 박인규 선생께 논어를 배웠다.
시집 ‘모악에 머물다’, ‘느티나무는 힘이 세다’, ‘모란 속을 걷다’, '사화집 ’화이부동세상‘, ’학술서 ‘정책성공과 실패의 대위법’(공저), ‘거침없이 쓴다-푸른돌 취석 송하진 서집’(2024)을 펴냈다. 한국정책학회 학술상을 공동 수상했으며, '포스트모던' 한국문학예술 시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2022년 6월 말 공직에서 은퇴한 후 서예가로서 인생 제2막을 맞이한 그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 한글서예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추진위원장, 서울시인협회 고문으로 전북과 전주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한국미술관, 전주 현대미술관 초대 서예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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