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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길목]‘호국’, 경상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8월 21일 14시50분

최근 한 2년 동안 연구과제가 있어 경상북도 지역을 자주 방문한 적이 있다. 평소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네비게이션에 온 신경이 가 있었지만 차츰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 풍광이야 전라도나 경상도나 뭐 크게 차이가 있을까마는 한 가지 눈에 확 띠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경상도 지역, 특히 경상북도 지역일수록 ‘호국’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호국’이라는 단어가 ‘호국도시 영천’, ‘호국의 성지 칠곡’ 등 도시브랜드로도 쓰이고, ‘경상북도 호국보훈재단’, ‘포항 환동해호국역사기념관’,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영천 호국기념관’. ‘의성 호국동산’ 등과 같은 기관이나 시설들도 보이고, ‘호국역사문화제’, ‘호국축제’ 같은 지역축제, 심지어는 경상북도 교육청의 ‘호국의 길 걷기’, 경북전문대학교의 ‘호국인증프로그램’, 대구 경일대학교의 ‘리멤버 호국영웅프로그램’ 등과 같이 ‘호국’을 주제로 한 각종 프로그램들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을 보니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라도나 충청도 등 전국 여러 곳에서도 ‘호국’은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경상도 지역에 만큼은 아닌 듯 하다. ‘호국’이 왜 경상도에서 더 브랜드화된 단어가 된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호국’은 나라는 지킨다는 뜻인데 경상도 지역에서 ‘호국’이라는 단어의 근간은 대부분 6. 25 한국전쟁과 관련된 것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6.25 전쟁 초기 가장 치열한 전투는 낙동강 전선이었고 그 곳을 지켜내는 과정에서 겪었던 역사적 경험이 그 바탕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경상도 곳곳에서 겪은 6.25 전쟁은 특별한 경험이었고 그 경험이 경상도 사회 전반의 보편적 경험으로 사회화되면서 ‘호국’이 인식 저변에 굳게 자리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25 전쟁기간 동안 우리나라 서부지역, 특히 전라도와 충청도는 상대적으로 큰 전투없이 인민군에게 빠르게 점령당한 탓에 그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인민군에게 직접 상해를 당한 사람들의 수가 적었을 테니 적에 대한 적개심이나 피해의식이 경상도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겠다. 특히 전라도 지역은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가 더 심했고 쌍방 모두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보니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의 6.25 한국전쟁 경험이 같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경험의 차이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나 보수 우익, 진보 좌파에 대한 태도의 차이로 연결되는 것 아닌가 하면 무리한 해석일까.

해방 직후의 사정은 달랐다. 일제 치하에서는 독립운동의 한 계열로 확산된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좌익 계열에 대해 전라도나 경상도 모두 큰 차이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경상북도의 중심인 대구는 일제 치하에서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만큼 공산주의, 사회주의 인사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는 경상도와 함경도 출신이 많은데 특히 경북 출신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좌익계열에 대한 반감이 없었다. 1946년 미군정의 미곡정책 실패와 친일 경찰의 횡포에 맞서 대구에서 좌익계열의 주도로 시작한 총파업에 일반 민중들이 동조하며 경상도 전역으로 번져 나간 대구 민중봉기 사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런 경상도가 오늘날 보수 우익의 대명사가 된 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인한 의도적인 편가르기가 가장 큰 이유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러한 편가르기가 쉽게 받아들여진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6.25 한국전쟁에서 있었던 치열한 전투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피해가 그들의 의식 어딘가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전라도에서 ‘호국’에 버금가게 쓰이는 말을 찾자면 아마도 ‘민주화’일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민주화’가 ‘호국’보다 더 마음에 와닿을지 모른다. 그것은 전라도에서는 민주화 경험이 보편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윤걸(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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