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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조건

[책마주보기]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지혜)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8월 12일 08시14분

고도의 문명화는 인류의 안락한 삶을 보장하리라 기대했으나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는 현대는 오히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진 것 같다. 이 같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현상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는 1879년 《진보와 빈곤》을 발표한다. 19세기 후반, 사회를 지배했던 통설은 인구 과잉이 빈곤의 원인이며 인구 증가는 생존물자의 한계를 가져올 것이라는 맬서스 이론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구 압박으로 과열된 경쟁이 저임금과 실업으로 이어져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임금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도리어 궁핍과 가난의 원인이 근면의 대가를 착취한 사회 지배조직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산력이 향상됨에도 최저수준으로 낮아지는 노동자의 저임금 체계를 비판하는 가운데 경작자 또는 노동자가 자기 노동으로 생산한 부를 정당하게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고 진보함에도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토지 사유제에 있다는 점을 명시한다. 인구 증가와 더불어 나타나는 거대한 물질적 이해관계의 힘이 토지와 결부되어 총생산물 중 토지소유자에게 주어지는 몫을 증가시키는 반면 임금과 이자로 돌아가는 부분은 적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불황과 빈부격차의 원인을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바로 ‘토지제도’의 혁신이 그것이다. 지대 이외에 부과되는 모든 조세를 폐지하고 토지의 가치에만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토지에 대한 공동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토지에 대한 사회의 공동권을 인정하는 개혁(토지 공유화)은 실제 적용에 있어 관습의 충격과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토지가치세의 단일 징수만으로 세수를 충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함께 다른 조세를 수입 수단으로 삼는 이익집단의 반대 역시 현실적인 장애가 아닐 수 없다는 질문이기도 하다.

공산주의나 민주주의의 제도와 이념은 본디 바람직한 원리에서 출발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실행 과정에서 본질이 변질되었고 그로 인한 사회 병폐의 악순환 고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강자의 역사로 구축된 자본주의야말로 다수의 희생에 의해 유지되었고, 그 경제 논리는 맬서스, 헨리 버클 같은 학자들에 의해 합리화되었다. 그들은 빈곤의 원인을 인간제도의 모순에 두기보다는 필연적인 결과로 돌림으로써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개혁에 대한 요구를 무마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입장에서 자본주의‧사회주의에 과감히 메스를 가함으로써 그 환부를 드러낸다. 분배의 불평등 문제는 문명의 진보와 퇴보를 결정짓는 인류 최대 과제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 세기 전 헨리 조지의 비판적 시각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인간 사회의 화두로 남을 것이다.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가질수록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인류의 본성이라는 견지에서 세계는 진보라는 희망의 코드화에 다가갈 것이다. 물론 불평등 해소가 선결 과제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다.

이지혜 작가는

‘미당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나주디카시’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부안독서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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