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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이슬람 순례, 하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6월 23일 15시20분

모슬렘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다섯 개의 기둥이 있다. 신도로서 신조를 암송하는 신앙고백의 샤하다, 하루에 다섯 번 이뤄지는 기도인 살라트, 그리고 성지순례인 하지와 금식인 라마단, 자선 헌금을 내야 하는 자카트가 그것이다. 모든 모슬렘에게 의무이지만,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이슬람력으로 12월은 순례의 달이다. 그래서 하지가 이뤄진다. 모슬렘이라면 평생 한 번은 성스러운 도시를 순례하는 하지를 행해야 한다. 장소는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태어난 메카와 무덤이 있는 메디나이다. 남성은 자유롭게 참여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의 허가를 받고 안전한 호위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메카와 메디나는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 하지 기간 300만 명 이상이 참여한다. 밀려드는 엄청난 인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우디 당국은 하지 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허가 없이 들어오는 사람이 절반은 된다고 한다. 올해 공식 허가 인원은 180만 명이다. 그중 160만 명이 외국인이다.

상황이 이러니 신도라 해도 하지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먼저 재력이 있어야 한다. 사우디까지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 또 장기간 숙식도 해결해야 한다. 하지 기간 숙박비나 식사비는 천정부지로 오른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제한적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장기간 순례이니 고행에 가까워 건강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참배가 어려운 많은 모슬렘은 다른 선행으로 하지 의무를 대신하기도 한다. 또 순례를 떠나는 사람에게 여비 일부를 제공하거나, 음식이나 옷가지 등을 싸주면서 대신 임무를 맡기기도 한다. 그것도 행하지 못하고 임종에 이르면 유언으로라도 남긴다. 그만큼 하지의 책임감은 크다.

하지를 마친 신도만이 이름 앞에 ‘알 하지’를 붙일 수 있다니 명예와도 관련된다. 또 하지는 모슬렘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신의 섭리로 이슬람이 뭉치기에 이때 메시지가 일시적 행동강령이 되기도 한다. 물론 하지 기간만 순례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기간에도 우므라라고 하는 참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하지만큼 종교적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지금은 하지 기간이다. 하필 이슬람력 12월이 일찍 찾아온 폭염 기간이라서 축제가 아닌 재앙이 되고 있다. 메카 그랜드 모스크 주변은 섭씨 51.8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고 있어 현재까지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도다. 온열질환 환자만도 3,000명이 넘었다고 하니 신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이다.

공식 허가를 받고 온 순례자들은 냉방시설이나 급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허락 없이 들어온 순례객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미허가자들이고, 가난한 나라의 신도들이다. 이슬람 최대의 축제 하지가 모두의 축복이 되어야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신을 믿는데도 신앙심 외에 엄연한 경제적 차별이 존재하는 듯하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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